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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지역뉴스

늙어가는 세상의 모든 부부에게

  •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본 어떤 관객이 남긴 후기에 이런 말이 인상적이다. "제목의 ‘늙은’이란 단어에 ‘구식’이라거나 ‘오래된’이라는 의미를 떠올리지 말 것"(공연쟁이 mono306).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표현이다. 늙은 부부의 풋풋한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연극은 결코 구식이거나 촌스러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실상 세상 그 어떤 사랑도 결코 낡은 느낌을 줄 수는 없다. 오히려 늙은 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어떤 사랑보다도 애잔한 러브스토리가 될 수 있다. 무위의 사랑, 남아있는 힘을 다해 오로지 사랑을 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들이야말로 세상 모든 연인들을 위한 사랑 참고서가 되지 않을까.  

    일상극 분야의 흥행 연출가로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극작연출가 위성신의 이 작품은 2003년에 초연된 이래 매년 꾸준한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는 연극이다.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이나 박정자의 '19 그리고 80'처럼 매년 꾸준히 공연될 수 있는 작품으로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는데, 해마다 변함없이 무대에 올릴 수 있으려면 그만큼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늙은 부부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뒤지지 않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유하고 있는 연극이다.

    박동만, 이점순은 이 작품의 유일한 등장인물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이다. 배경은 할머니의 툇마루가 중앙 전면에 배치되고 미닫이 문 너머로 대문과 수돗가가 있는 마당이 보인다. 오랜 세월 혼자 살아온 듯한 이점순은 어느 봄날 월세 방을 내놓고, 방을 찾던 박동만은 집을 찾아 들어온다. 살아온 세월이 대변하듯 고분고분하지 않은 할머니를 대상으로 바람기가 다분한 할아버지의 너스레도 만만치 않다. 첫 대면부터 깔깔했던 두 사람은 음식을 나눠먹고 소소한 하루 일과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차츰 서로에 대한 연정을 키워간다.

    마치 스무살의 풋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처럼 적당히 쑥쓰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이들의 행동은 애틋할 정도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가을로 접어들 무렵, 박동만은 이점순에게 불치의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못내 가슴 저려하던 두 사람은 남은 시간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나누게 된다.

    장치가 화려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모습에 다름 아니다. 티격태격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허허실실 웃어버리는 두 사람의 모양새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노인들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작품 속 계절을 따라 애잔한 감동이 이어지는 까닭은 삶처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것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이 무대를 거쳐 간 배우들만 해도 할아버지가 6명, 할머니가 5명이나 된다. 초연 무대에 섰던 손종학, 김담희같은 젊은 배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국민 배우급의 베테랑 연기자들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순재를 시작으로 이호성, 양택조, 오영수, 정종준이 할아버지였고, 사미자, 이혜경, 성병숙, 예수정이 상대역을 맡았다. 제작팀에서는 각각의 배우들의 느낌을 잘 파악해서 해마다 색다른 커플을 만들어냈다.

    이번 성남아트센터 앙상블 시어터에 오르는 배우는 할아버지 역으로 정종준, 할머니 역으로는 사미자와 성병숙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정종준과 성병숙은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서는 무대이고, 사미자는 벌써 세 번째 서는 무대가 된다. 

    실험적이고 난해한 여타 연극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편안하고 친근한 일상극인터라 배우들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모습이다. 따뜻한 인간미가 담긴 '늙은 부부 이야기' 덕분에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은 늦가을의 밤바람이 비단 춥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연인은 물론 부모님과 함께 찾아볼 만한 연극으로 손색이 없다.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일시_ 11월 6~16일 평일 8시, 토 3시 7시, 일 3시, 월 쉼
    장소_ 성남아트센터 앙상블 시어터
    문의_ 031-783-8000

  • 조선일보  2008.11.05 09:59

    http://spn.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05/20081105004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