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손자인 이규경(李圭景.1788-1856)이 편찬한 방대한 분류학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8월15일이면 가회(가배) 놀이를 하고 가묘(家廟)에다 시식(時食), 즉 시절 음식을 올리는가 하면, 조상의 산소를 찾는 유래를 규명하면서 신라와 가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가회 놀이에 대해서는 "7월 보름에 왕이 왕녀(王女)에게 육부(六部)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넓은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해서 8월 대보름이 되면 그 성적을 따져서 지는 편이 술을 마련하여 서로 노래 부르고 춤추게 하는데, 이를 가배회(嘉俳會)라 한다. 즉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면서 회소곡(會蘇曲)을 노래하는 때문에 이를 가회(嘉會)놀이라 한다"는 기록을 인용한다.
이규경은 그 출처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이런 기록이 보이는 곳은 삼국사기다.
나아가 추석날 성묘하는 습속은 동사(東史)라는 문헌을 근거로 가야, 그 중에서도 김해에 기반을 두면서 김수로가 건국시조인 금관가야에 뿌리를 둔 것으로 지목한다.
동사에 이르기를 "가락국에서는 시조 수로왕의 사당을 처음에 수릉(首陵) 옆에 건립하고는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 그리고 8월15일에 제사를 드렸다"고 했다.
동사는 조선 영조 때 인물인 이종휘(李種徽.1731-1797)가 편찬한 역사서를 말한다. 이종휘는 이 기록을 삼국유사에서 끌어왔지만, 이규경 시대만 해도 삼국유사는 그다지 읽히지 않은 문헌이었다.
이런 기록들을 근거로 들면서 이규경은 한가위 풍습이 크게 신라와 가야 전통이 혼합된 결과물로 해석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구축한 한국문집DB자료에서 '추석'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하면 추석을 소재로 한 시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조선왕조 건국의 설계사인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문집 삼봉집(三峰集)에 수록된 한 오언고시(五言古詩)에는 추석을 맞아 읊은 다음과 같은 시를 찾을 수 있다.
"평생에 밝은 달 사랑하건만 / 밝은 달이 영원히 둥글지는 않네 / 달을 대하노니 친구가 생각나는데 / 친구는 저 하늘가에 있네 / 오늘 저녁 무슨 저녁인가 / 달과 사람 둘 다 어울린다네 / 희고 흰 달빛은 서리와 같고 / 따습다 따습다 옥 같은 사람 / 달이 지니 사람은 잠 못 이루고 / 사람 돌아가면 달은 또 돋아 / 사람이란 모였다 헤어지기 마련 / 달도 또한 차면 이지러지네 / 사람이 달과 서로 어긋나니 / 아름다운 기약 서로 틀려만 가네 / 한 달에 한 번 달은 둥그니 / 달 마주하며 길이 서로를 생각하네"
친구와 헤어지는 심정을 이지러졌다간 차곤 하는 달에 비겨 노래한 것이다. 달이 이지러질 때 헤어져야 정상이지만 보름에 헤어지니 더욱 안타깝다는 심정을 읊었다.
병자호란 때 극렬한 주전론자로 이른바 삼학사 중 한 명이기도 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문집 청음집(淸陰集)에는 추석날 제비를 본 심정을 이렇게 노래한 시가 수록돼 있다.
"가을바람 솔솔 불어 깃털 위를 스치거니 / 석양 속에 돌아갈 맘 품은 제비 맘 바쁘네 / 시든 풀은 섬돌 덮고 솔엔 이슬 맺히어서 / 고향 산 가을빛은 더욱 처량하리니"
제비는 사철 제사 중 봄철 제사 때 날아왔다 가을철 제사 때 날아가므로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삼봉이나 청음의 추석 소재 시가 애상(哀傷)을 기조로 한 데 반해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송파(松坡)에서 추석날 술잔을 나누며 지은 시는 시종 즐겁기만 하다.
"갠 날씨에 시골 마을 즐거워서 들레어라 / 가을 동산 풍취는 과시할 만도 하구나 / 지붕엔 넝쿨 말라 박통이 드러나고 / 언덕엔 병든 잎새에 밤송이 떡 벌어졌네 / 술잔만 마시면서 좋은 잔치 맞이하고 / 시구는 전혀 없이 이웃집에 모이기도 / 슬퍼라, 몸이 좋지 않아 밤 뱃놀이 못하니 / 달빛 아래 출렁이는 금물결 구경 하지 못하네"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추석날 판교(板橋)에 있는 선영을 배알한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늦게 태어나 할아버지 얼굴 뵙기 어려워 / 추석날 두 번 절하며 눈물 글썽이네 / 이 정성 기껏 못난 손자 슬픔을 위로하고 / 서리 이슬 내린 빈 산에서 차마 돌아가지 못하네"
어린 나이에,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간절했음이 드러난다. 추석에 성묘하는 전통이 있었음은 이덕무의 이 시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연합뉴스 2008.09.13 06:30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8/09/13/0200000000AKR200809121525000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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