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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이든 망고든 조상님은 기뻐하실 것”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9. 5. 15:09

퇴계 이황 종가의 다례상에는 멜론이 오른다. 고산 윤선도 종가는 제사상에 바나나뿐 아니라 오렌지도 올린다. 불천위(不遷位·4대가 지났어도 자손 대대로 기제사를 모실 수 있게 국가나 유림에서 인정한 조상) 제사임에도 그렇다. 이상하거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멜론·바나나·오렌지가 이상하다면 15~16세기에 들어온 토마토나 17세기 이전에 들어온 수박이 제사상에 오르는 것도 ‘법도에 어긋난 일’이다.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 종가 제사 모습. 수입 과일인 바나나가 눈에 띈다. 예서에도 음식 종류의 제한은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정조(재위 1776~1800)는 “수박은 근년에 위구르에서 들어왔으나 사람도 귀신도 모두 그 즙액을 즐긴다. 물건은 이롭게 사용하고 생활에 윤택한가를 따지면 그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외래 식물’ 수박이 제사상에 단골 손님임을 들어 엉뚱하게도(?) 당시 외래 작물이었던 담배의 경작을 장려하기도 했다(정조는 지독한 골초였다).

전통 제례 음식 전문가인 김상보 대전보건대 교수는 “전래되는 예서를 보더라도 음식의 종류 자체에 대한 제한은 없다”며 “다만 집안의 형편에 따라 음식 가짓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퇴계 종택 17대 주손(胄孫·맏손자)인 이치억씨도 “제철 과일을 조상께 정성껏 바치는 것이 제사이기 때문에 멜론이든 망고든 음식의 종류를 가릴 바는 아니다”고 말한다.

14일은 민족의 명절 추석이다. 때마침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종갓집 제사, 어떻게 지속될 것인가’를 놓고 3일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퇴계 이황 종가 등 잘 알려진 명문 종가도 행사에 참석했다. 명절은 현대 생활 속에서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가족 축제다. 이날 발표를 중심으로 제사와 상차림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정리해 봤다.

◆제사상에도 좌의정·우의정이 있다 흔히 ‘어동육서’로 표현되는 상차림이다. 이 표현은 18~19세기 조선조 예서에 등장한다. 그러나 좌간남(左肝南)·우간남(右肝南)이란 표현이 먼저다. 1609년에 나온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에 나온다. ‘간남’이란 손님 상 남쪽에 차려지는 중요한 밥 반찬을 말한다.

안동 권씨가의 제사 기록인 『묘사의절(墓祀儀節)』에 따르면 좌측에는 육남(肉南, 갈비찜·수육·육탕 등)을 뒀고, 우측에는 어남(魚南, 조개전·멸치전·합탕 등)을 뒀다. 김상보 교수는 “이는 상차림에 있어서도 좌의정·우의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음양질서에서 양(陽)에 해당하는 고기 반찬이 좌간남으로 보다 격이 높은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제사 상차림은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좌간남·우간남’의 법식에 맞춘 데서 기인한다.

◆제사 상차림은 불교식? 김 교수는 “제사 의례가 유교 전례를 정확히 따른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상차림에 있어서 고려시대 불교식 공양을 많이 본받았다”고 지적했다. 고려 왕실은 종묘제·사직제 같은 공식 국가 행사에서는 유교식 관례를, 왕실의 기일 등 사적 영역에서는 불교식 의례를 따랐다. 이 사적 공간의 제사가 조선 왕조에 계승되면서 유교적 요소가 가미돼 변형됐다는 해석이다. 그는 “고려 때부터 지속된 사적 공간에서의 불교식 음식 상차림이 조선조에 오면서 가례(家禮)를 수입하면서 규범화된 것이 지금의 제사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과일을 고이는 것도 불교식 재(齋)의 영향이 크다. 이에 비춰보면 제사가 유교라는 종교 행사라기보다 한국 고유의 조상 숭배 전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사상에도 육-해-공의 순서? 제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은 적(炙)이다. 제사상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술 안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이며, 밥 반찬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좌간남·우간남이다. 『묘사의절』은 ‘적’을 “우(羽)·모(毛)·린(鱗) 3적의 첨합(添合)”이라고 기록한다. 깃털을 뜻하는 우(羽)는 닭이나 꿩고기로 만든 적이다. 모(毛)는 털을 의미하니 육지의 고기를 말한다. 원래는 소의 간(肝)을 구운 것이다. 린(鱗)은 비늘이니 물고기로 만든 어적(魚炙)이다.

제사에서 술을 세 번 올릴 때 초헌(初獻)에서는 술과 함께 간적(肝炙)을 올리고, 아헌(亞獻)엔 어적(魚炙)을, 종헌(終獻) 때 계적(鷄炙)는 바치는 것이 조선 왕실 법도라도 한다. 세 번 술을 올릴 때마다 세 차례 적을 번갈아 올리고 물리고 하는 것이 맞지만 양반가에서는 이를 쌓아 올려서 고임상으로 냈다. 적을 고이는 순서도 밑에서부터 쇠고기-생선-닭(꿩)의 순서여야 하지만 집안마다 다르다.

◆제례에서 여성의 위치 학자들도 제사 상차림은 지역·가정마다 달라 ‘가가례(家家禮)’라 부를 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옳으니 그르니 할 수 없다고 한다. ‘남의 제사상에 밤 놓으라 대추 놓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도를 따지자면 『예기』에 가장 어긋난 것이 여성의 제사 참례다. 『예기』에는 “제사는 부부가 함께 올린다[夫婦共祭]”라고 돼 있다. 김경선 성균관 석전교육원 교수는 “『주자가례』에도 의례 절차에서 모두 주인[宗孫]과 주부[宗婦]가 함께 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지적한다. 제사 참례는 공자·주자 시대에도 완전히 남녀평등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  2008.09.05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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