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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파뿌리 되면..이혼 합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30. 10:09

직장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최모(65)씨는 최근 30여년을 함께 살아 온 조강지처로부터 느닷없는 이혼장을 받았다. 막내아들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가 갈라서자고 요구한 것. 최 씨의 아내 김모(62)씨는 이혼을 요구하며 지난 10여 년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의 아내는 “지난 30여 년 동안 대화 한번 제대로 해 본적이 없고 말만 꺼내면 ‘여편네가 뭘 안다고…’라며 무시하는 남편의 폭언과 폭행, 그리고 남편의 부정행위 등 그 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며 법원에 이혼 신청을 받아들여 줄 것을 호소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편 최 씨에게 “재산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들은 조정이혼을 통해 끝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으며, 남편 최 씨는 재산 분할 및 위자료 명목으로 아내 김씨에게 4억여원을 줬다.

최근 인터넷 유머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30대엔 마주보고 자고, 40대엔 천장을 보고 자고, 50대엔 등 돌리고 자고, 60대엔 각 방을 쓰며, 70대엔 어디서 자는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비록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 만큼 노인들의 부부갈등과 이로 인한 고독감이 심각하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1990년대 이웃 일본에서 “내 인생을 찾겠다”며  일기 시작한 황혼이혼 바람이 우리 사회에도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이다.

황혼이혼이란 소위 노년기에 하는 이혼을 말하는데, 이를 협의(俠義)로 보면 55세가 넘는 부부나 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의 이혼을 말하지만, 광의로 본다면 자녀들이 출가했거나 대학생이 되어 독립할 수 있게 된 후의 이혼을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이혼율 하락 속에도 황혼이혼은 꾸준히 늘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방생한 총 이혼건수는 12만 4,590건으로, 하루 평균 341쌍의 부부가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서로 각자의 길로 돌아선 셈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래가사처럼 대한민국은 가히 이혼공화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더욱이 사회 변화와 함께 이혼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는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0만 건을 넘어서더니 2003년 16만7,096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IMF 이후 대량실업과 카드대란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 등 악화된 경제상황이 가정 해체로 이어진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혼 증가추세는 2004년부터 꺾여 현재 4년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혼인연령이 늦어지면서 결혼해서 같이 사는 부부 인구가 줄어든 데다 법원이 2005년 3월 협의이혼 신청을 바로 들어주지 않고 1주일(자녀가 없는 경우) 내지 3주(자녀가 있는 경우) 동안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는 ‘이혼 숙려기간제’를 시범 운행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2004년에 10%에 불과했던 협의 이혼 신청 취하율은 이혼 숙려기간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21.1%까지 상승하는 등 홧김 이혼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더욱이 ‘홧김 이혼’ 을 막기 위한 ‘이혼 숙려기간제’를 골자로 하는 개정 민법이 2008년 6월 22일부터 정식 시행되면서 숙려기간은 한 달 내지 석 달로 늘어났다.   

반면, 소위 ‘황혼이혼’으로 불리는 20년 이상 산 부부의 이혼비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고령화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다. 지난해 전체 이혼건수는 12만4,590건으로 1년 전인 12만5,032건보다 442건(-0.4%) 줄어든 반면, 55세 이상 남성의 이혼은 1만4,202건으로 오히려 1,281건(9.9%)이 늘었다. 지난해 평균 이혼 연령을 남녀 각각 0.6세, 0.2세(남성 43.2세, 여성 39.5세)나 올렸을 정도다.
특히, 지난해 65세 이상 여성의 이혼은 1,427건으로 2005년(922건)보다 64.6% 증가했으며, 1996년 198건과 비교해서는 무려 7배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는 옛말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요구할 경우 아내는 아무런 대책 없이 아이들의 양육권만 넘겨달라고 애원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아내에게 매달리는 남편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히, 남편의 권위와 폭력에 시달린 여성노인들의 ‘독립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자식들 봐서 참는다”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들의 이혼 문의가 급증하고 있으며, 2000년 1백건을 넘지 않았던 것이 지난해는 300건으로 대폭 늘었다. 이 중 80% 정도가 여성의 상담 문의다.
이혼관련 전문변호사인 노경희 변호사는 황혼이혼 증가 원인에 대해 “황혼이혼은 자신보다 자녀와 가정을 우선했던 과거 가정문화가 바뀌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사회가 개방되고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면서 남은 인생이라도 자신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의식변화와 함께 더욱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변호사는 이혼 사유에 대해 “환갑을 넘긴 분들이 이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젊은 부부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한 부분이 많다”면서 “가정 폭력이 심해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는 경우, 배우자의 일방적인 외도로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경우, 배우자 일방이 거의 유기한 상태에 이를 정도로 무관심한 경우 등 ‘홧김 이혼’ 차원이 아닌 오랜 세월동안 쌓인 서로간의 불신과 분노가 터져 나오면서 야기된 갈등”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강’의 김수연 변호사는 “이러한 추세는 남녀평등 의식의 확산과 이혼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는 이혼 이후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한 현실적인 문제인 돈과 관련, 재산기여도를 전업주부의 경우 30%, 맞벌이 부부는 30~60%, 남편의 가업을 도운 경우 20~50%정도 인정하고 있다”면서, 이혼을 해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고통을 고스란히 지켜 본 자녀들의 도움도 황혼이혼을 결정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면서 “실제 소송이혼의 경우, 자녀들이 친족진술서를 작성하는 사례가 빈번하며, 일반 진술서보다 많은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노인부양 부담 등 또 다른 사회문제 야기

한 평생을 희로애락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기본은 서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뢰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전문가들은 이혼을 부부 신뢰 관계의 무너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아울러 이혼은 자녀양육, 재산분할 등 사회문제로 직결된다. 더욱이 경제력과 기력을 상실한 노인들의 이혼은 홀로 된 노인의 부양이라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노경희 변호사는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의 경우, 그 자녀의 친권 행사자 및 양육권자 결정에 있어 다툼이 있는 반면, 환갑을 넘긴 노부부의 경우는 당사자의 이혼을 넘어 출가한 자녀들이 느끼는 고통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서 “나아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이혼한 노부부가 각자 새로운 생활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녀들 교육과 출가에 대부분의 재산을 소비한 경우,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이혼 후 열악한 환경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수연 변호사는 “이혼을 준비하는 당사자들은 남자든, 여자든 심리적으로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들이 막상 이혼을 하게 되면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이 발전해 노인자살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또 “부모의 이혼 후,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자녀들이 겪는 정신적 혼란과 방황, 이로 인한 가정파탄 및 결혼에 대한 자녀들의 불신 등 이혼자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곳곳에 산적해있다”고 지적했다.

노부부 백년해로(百年偕老) 하는 법

이유를 막론하고 이혼을 고려중인 대부분의 부부들은 이혼을 하면 자유로워지고 모든 고민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이혼 후,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직 · 간접적인 고통에 시달리기 쉽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혼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은 ‘내가 왜 이혼을 하려는 건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이혼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 건지’, ‘이혼 이후 오히려 더 큰 문제 발생은 없는지’, ‘이혼결정으로 자녀가 겪게 되는 고통은 없는지’ 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경희 변호사는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실행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혼이라는 극약처방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강조한 한편, “결국 평생을 함께 하면서 자녀들이 출가하기까지 살아온 노년의 부부가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새롭게 다지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수연 변호사는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너무나 커다란 불행이라면 이혼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전문변호사로 상담을 하는 입장에서 이혼은 최후의 방법으로 삼기를 권하고 있다”는 그는 “부부간의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된다면, 전문상담기관을 방문해 부부간의 깊이 있는 대화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실버케어뉴스  2008.07.30 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