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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상가에 요양원... 불 나면 속수무책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10. 19:57
지난 6∼8일 둘러본 서울과 경기도 소재 노인 요양시설은 겨울철 화재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지난해 11월 12일 노인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던 ‘포항 인덕 노인요양센터 화재 참사’ 발생 1년이 돼가지만 노인요양시설의 화재 방비는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 “불나면 끔찍한 상황 발생할 것” = 경기도 부천시 상동 K노인요양원은 상가 5층에 있다. 이곳에는 치매노인 등 7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혼자 거동이 불가능해 침대에서 생활하는 노인은 20여명이었다. 그러나 야간 상주직원은 남성 1명, 여성 5명 등 모두 6명에 불과했다.
노인요양사 전모(29·여)씨는 “불이 나면 거동이 가능한 노인들을 대피시키기도 벅찰 것”이라며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싫다”고 말했다. 이 요양원이 있는 상가는 유흥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으며 요양원 아래층에는 유흥주점, 각종 식당 등 화재에 취약한 업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H요양원은 상가 꼭대기인 15층에 있다. 신축 건물이기 때문에 천장에 설치된 소화설비인 스프링클러나 소화기 등은 제대로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화재 시 탈출로로 쓰이는 비상계단은 일반인 위주로 가파르게 시공돼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신속하게 대피하기는 적절치 않아 보였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불이 나면 건물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차고 칠흑같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일반 성인도 탈출로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며 “포항 인덕요양센터는 2층 건물이었지만 노인들이 탈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올 겨울도 노인요양시설, 화재 무방비 = 소방방재청, 보건복지부 등은 포항 인덕요양센터 참사의 후속 조치로 소방시설설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을 개정했다. 노인과 영유아가 24시간 동안 생활하는 시설은 면적과 관계없이 스프링클러와 자동 화재탐지 장비, 자동 속보장비(화재 시 자동으로 소방서에 신고되는 장치)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것이 골자다.
지난달 25일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내년 2월 5일부터 시행된다. 올 겨울에도 노인요양시설들이 화재에 무방비인 이유다. 게다가 기존 시설은 2년간 유예기간을 둬 2014년 2월에야 안전조치가 시행된다.
제도 시행이 늦춰진 것은 요양시설 운영자들의 반발 때문으로 알려졌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려면 200㎡당 1300만∼1500만원이 소요된다. 안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요양시설 측의 불만을 정부가 수용한 결과다.
영세 요양시설의 난립도 문제로 지적된다.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으로 노인과 부양자들의 비용 부담이 20% 정도로 줄어 요양시설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또 의사가 상주할 필요가 없고 간단한 행정절차만으로 요양원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노인요양을 산업으로 보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열악한 시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으로 봤지만 오산이었다”며 “지금에서야 규제하려니까 안전설비를 갖추지 못한 영세 요양시설의 반발이 거세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이도경 기자 2011.11.08 18:31 --> 기사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