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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지 말고 채소 꼭 익혀 드세요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29. 11:17
채소는 '생으로 먹어야…'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저런 이유로 익혀 먹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생으로'와 '익혀서'의 5라운드 경기를 중계한다.
◇라운드 1, 영양 '생으로'의 최대 장점이 돋보이는 라운드다. '생으로' 즐기면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조리를 위해 가열하면 채소에 풍부한 비타민과 폴리페놀(항산화성분)이 파괴된다. 특히 수용성 비타민인 B(엽산 포함)·C의 손실이 크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자료에 따르면 시금치는 조리 도중 비타민 C의 64%를 잃는다. 완두콩·당근은 통조림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비타민 C의 85∼95%가 파괴된다. 그러나 '생으로' 먹는다고 해서 영양소가 모두 소화·흡수되는 것은 아니다. '생으로'의 세포벽이 단단해서 영양소의 20~30%만 체내 흡수된다. 반면 '익혀서'는 상대적으로 소화·흡수가 잘 된다. 또 '익혀서'는 몸집이 작아(부피가 줄어들어) 앉은 자리에서 다량 섭취가 가능하다.
◇라운드 2, 식중독 식중독 유발 위험이 있다는 것은 '생으로'의 숙명. 2006년 9월 미국 21개 주에서 192명이 병원성 대장균 O-157에 감염돼 이 중 5명이 숨졌다. 사고의 원인 식품은 시금치였다. 올해는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토마토가 미국에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식중독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열이다. '생으로'는 식중독균을 죽일 방법이 없다.
한양대병원 영양과 강경화 영양사는 “쌈채소·오이 등 생 채소를 그대로 먹으면 표면에 묻은 잔류 농약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며 “생 채소를 물에 담갔다 건져낸 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으면 잔류 농약의 90% 이상이 제거된다”고 강조했다.
◇라운드 3, 만성 신부전 혈액투석 중인 만성신부전 환자에겐 '생으로'가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최민규 교수는 “생 채소를 먹으면 데치거나 쪘을 때보다 칼륨을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며 “칼륨은 일반인에겐 혈압을 안정시키는(나트륨 배출) 고마운 미네랄이지만 만성 신부전 환자에겐 생명을 위협하는 고칼륨혈증을 유발한다”고 소개했다.
따라서 만성신부전 환자는 '생으로' 섭취하는 것을 삼간다. 버섯·시금치·취·쑥·늙은 호박 등 칼륨 함량이 높은 채소의 섭취를 제한한다. 조리 도중 채소에서 빠져 나온 칼륨을 섭취하지 않는다. 된장국·채소국이 식탁에 오르면 건데기만 건져 먹고 국물은 마시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라운드 4, 라이코펜 영국의학저널(BMJ) 올 6월호엔 '생으로'가 항상 '베스트'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논문이 실렸다. 엄격한 생식을 하는 독일인 19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들의 혈중 라이코펜 농도가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라이코펜은 토마토·수박 등의 붉은색 색소 성분으로 강력한 항산화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이연정 교수는 “전립선암 등 일부 암 예방 효과가 있는 라이코펜은 지방에 녹는 지용성 물질”이며 “채소·과일 내의 지용성 물질은 가열·조리 과정에서 세포벽이 파괴돼야 몸안에 더 많이 흡수된다”고 설명했다.
생 토마토보다 토마토 케첩·소스·퓨레 등 토마토 가공식품의 라이코펜 함량이 높은 것은 이런 이유다. 채소의 비타민 A·D·E·K와 카로티노이드(항산화 성분)도 마찬가지로 가열·조리하거나 조리 시 식용유를 두르면 체내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 샐러드용 채소에 아보카도(지방 함량이 높다)를 곁들이거나 고지방 드레싱을 뿌리면 저지방·일반 드레싱을 첨가했을 때에 비해 라이코펜은 4배, 루테인(항산화 성분)은 7배, 베타 카로틴(항산화성분,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바뀐다)은 18배 더 흡수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라운드 5, 맛 일반적으로 '익혀서'의 맛이 '생으로'보다 낫다. 지방 맛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채소를 더 많이 먹게 하려면 맛의 호감도를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20세 남녀 1500명에게 '채소 섭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물었는데 맛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미국예방의학저널 올해 5월호).
국민대 식품영양학과 정상진 교수는 “청소년과 20대는 육식을 선호하는 시기”이며, “이들에게 채식을 유도하려면 어린이에게 교육하듯 건강상 이점만 알려선 별 소용이 없고 조리법에 신경 써서 맛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중앙일보 2008.07.29 00:40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7/29/31682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