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실버관련/기타
그 집에서 들려온 음악 소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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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듯한 오두막… 머리 깎은 여인은 춤을 추고 있고
슬픔에 찬 남자는 노래를 부르고 노인은 울고 있었다
매년 하던 대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왕은 총리대신과 함께 산책에 나섰다. 왕은 화려하게 장식한 거리를 보면 기분이 좋았지만, 그래도 그의 신민(臣民)들이 그를 기쁘게 하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두 사람은 늘 머나먼 곳에서 온 상인으로 가장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집집마다 창틀에 밝힌 촛불, 선물을 파는 노점, 식탁을 풍성하게 차리고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두 사람은 시내 중심가를 거닐었다.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시내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빈민가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조명도, 촛불도, 맛있는 음식 냄새도 없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해마다 이런 모습을 보았던 왕은 이제는 왕국의 가난한 이들에게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말했다. 대신은 그날그날 승인받을 예산과 씨름하고 외국 사신들과 옥신각신하다 보면 이 문제가 또다시 자연스레 묻히리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가난한 집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이었다. 낡아서 갈라진 틈새로 두 사람은 집 안을 엿보았다. 그들의 눈에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한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울고 있었고, 머리칼을 박박 깎은 젊은 여자가 춤을 추고 있었고, 슬픈 눈을 한 젊은 남자가 탬버린을 치며 옛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군."
왕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음악이 멈추고, 젊은 남자가 문간에 나타났다.
"우리는 잘 곳을 찾고 있는 행상들이오. 음악 소리에 이끌려왔다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걸 보고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을까 해서 문을 두드렸소."
"시내로 나가시면 여관이 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저희는 도와드릴 처지가 못 됩니다. 음악을 연주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 저희 집은 슬픔으로 가득합니다."
"까닭을 물어봐도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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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
"바로 나 때문이라오." 휠체어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난 내 아들이 궁에서 서기로 일할 수 있도록 서법(書法)을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쳤지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자리가 나질 않는구려. 게다가 어젯밤 꿈에 천사가 나타나 왕이 이곳을 방문할 터이니, 은잔을 사두라고 하는 게 아니겠소. 왕이 그 잔으로 물을 마시고, 아들에게 일자리를 줄 거라 하더군요. 참으로 어리석은 꿈이지요. 그래도 내겐 천사의 말이 꽤나 그럴듯하게 들렸던지라 천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오. 그런데 우리에게 은잔을 살 돈이 어디 있겠소. 결국 며늘아기가 머리칼을 잘라 장에 나가 팔았다오. 그 돈으로 저기 저 잔을 사온 거라오. 아들 내외는 크리스마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열심히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있었지요. 하지만 무슨 흥이 나겠소."
왕은 은잔에 물을 한 잔 청해 마셨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말했다.
"오늘 내가 총리대신을 뵐 일이 있었소. 그런데 그분 말이 다음 주에 궁에서 서기를 뽑는다고 합디다."
노인은 그 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손님들을 공손히 배웅했다.
다음 날 아침, 왕실에서 새로 서기를 뽑아 궁에 들인다는 발표가 있었다. 새 서기를 뽑는 날, 궁의 대기실은 온통 지망자들로 들끓었다. 이윽고 총리대신이 들어와 말했다.
"시제는 이것이다. '한 노인이 울고 있었고, 머리칼을 깎은 여자는 춤을 추었고, 슬픈 눈을 한 젊은 사내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까닭이 무엇인가?'"
웅성거림이 온 방 안에 퍼져갔다. 아무도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못했다. 초라한 행색을 한 채 구석에 서 있던 젊은 남자를 제외하고는.
그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인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파울로 코엘료는?
현대인의 메마른 정서를 샘물처럼 적시는 깨달음의 글로 독자들을 매혹하며 '코엘료 신드롬'을 일으킨 세계적 작가다. 그의 대표작 《연금술사》(1988)는 지금까지 3000만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30/20081130007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