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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끼오~ 탕! 탕! 탕 !… 50여년 세월의 담금질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1. 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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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안읍성의 새벽 천리길을 달려와 마주한, 이름하여 즐겁고 편안한 고을 전남 순천시 낙안(樂安) 읍성의 새벽 풍경. 100여 가구가 초가에서 농사도 짓고 민박이나 주막, 점방 등을 하며 살고 있다. |
첫닭이 울자 앞산 너머 붉은 동이 트기 시작한다. 누런 초가지붕 위에서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대나무 사립문짝을 열고 골목으로 나온 부지런한 농부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쓸고 있다. 집집마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들이 새벽 여명에 더욱 붉은 빛을 띠며 백열등처럼 달려 있다.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리는 고향의 모습이 있다면 바로 이런 풍경이 아닐까? 가을의 끝자락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에서 마주한 새벽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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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금질전에… : 화덕에 쇳덩어리들이 농기구로 거듭나기 위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
탕탕탕~.
아침 일찍 들려오는 소리에 끌려 발길이 머문 곳은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바로 앞에 보이는 읍성대장간이다. 달아오른 화덕에서 막 꺼낸 시뻘건 쇳덩어리를 망치로 치는 소리가 찬 아침 공기를 가르며 종소리처럼 맑게 들린다. 몇 번의 망치질에 둥글넓적하던 쇳덩어리가 호미가 된다. 올해 여든 한 살의 강호인 노인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령 대장장이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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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노인의 웃는 모습에 힘찬 기운이 넘친다. 81세라는 고령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다.
“일제 수탈이 심해 먹고 살기가 겁나게 힘들었어. 그나마 밥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지.”
월급 한푼 받지 않고 오로지 밥만 먹고 기술을 익히면 주인은 대장간에 필요한 장비들을 갖춰서 독립을 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대장장이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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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장 : 올해 여든 한 살의 현존하는 국내 최고령 대장장이 강호인 노인. 일하는 모습이 젊은이 못지않게 힘차다. |
“이제는 할 사람이 없어. 30~40년 했던 사람들도 전부 다른 일 해버리고. 예전에는 호롱불 밑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해도 행복했는데, 배우려는 사람도 많았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듯 쇠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늙은 대장장이의 힘줄이 불끈 곤두선다.
“난 쇠를 두들길 때가 제일 행복해.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망치질을 못 놓지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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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세우기 : 대장간의 마지막 작업은 그라인더에 갈아 모난 부분을 둥글게 하고 농기구의 날을 세우는 일이다. |
호미, 낫, 곡괭이…. 서너 평 남짓한 좁은 대장간에는 강 노인이 만든 농기구로 가득하다. “대장간에서는 모든 물건을 때려서 만들지. 두들겨야 잡철이 떨어져 순수해지지.”
내리칠 때마다 단련되는 강철, 강씨 노인이 백번 이상은 두들겨 만든 농기구는 10년은 족히 쓸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낙심할 것 없어. 지금 우리가 힘든 것도 더 단단해지게 하려고 하늘이 두드리는 거여.”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어려운 경제상황을 말하는 그의 삶의 철학에서 우리 시대 진정한 장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문화일보 2008.11.29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11290103133404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