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 당선작 - 더 일찍 만났으면 내가 마당도 걸었을 것을...
장려상 - 최신자
더 일찍 만났으면 내가 마당도 걸었을 것을...
제가 요양 보호사로써 최 ○ 어르신을 만난 때는 풍성한 곡식과 과일이 넘쳐나는 가을이 끝나갈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미용 봉사를 15년 전부터 해온 저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최 ○ 어르신의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20년 전인 1989년 5월 4일 저녁, 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셨는데, 함께 살고 있는 아들조차 정신 지체 장애 3급으로 말하기와 듣기가 매우 부족해, 두분이 같이 생활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요양 보호사로서 첫 번째로 맡은 최 ○ 어르신의 댁은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허름한 한옥 집이었습니다. 처음 댁에 방문 했을 때 한옥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앞에는 막 패어 놓은 나무 장작들이 쌓여져 있었습니다. 집 안으로 더 들어가 안채의 문을 열자 어르신 한분이 저를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습니다.
그 분의 상태는 15년 전부터 멀리서 보았지만, 요양보호사의 눈으로 다시 할머니를 만나니 안쓰러움에, 말이 다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집안의 구석구석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고, 할머님의 초라한 모습에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습니다.
맨 처음 제가 어르신을 위해 시작한 첫 번째 일은 어르신을 씻겨 드리기였습니다.
어르신은 한두 달 안에 한번 씻는 것도 벅차셨고, 부끄러움에 가족 외엔 씻는 것을 맡기지도 못하셨습니다. 제 손이 닿아 할머니를 씻겨 드리자 하얗게 각질이 일었던 손은 어느새 뽀얗게 제 색을 발하였고, 한층 더 젊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저는 어르신의 머리칼도 단정하게 다듬어 드렸습니다.
어르신은 그 뒤로 제가 올 때 마다 아들에게 ‘어머니 예뻐지셨어요.’ 라는 말을 들었는데, 스스로도 무척 행복해 하셨고, 아드님도 너무 감사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씻겨드리며 보게 된 손에 놀라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몸져누우신 후로 아들이 일으켜 주면 그제야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혹여 혼자 있을 때는 아픈 몸을 손을 꼭 쥔 채로 끌며 기어 다녀야 되서 손톱은 손바닥을 파고 들어가 썩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그때부터 어르신을 손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어르신의 손을 더운 물에 담구고 주무르며 마사지를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몇 달 지나지 않아 손이 점점 펴지더니 이제 손바닥의 상처도 눈에 띄게 아물어 들었습니다.
저는 손에 난 상처를 아예 없애기 위해서, 어르신의 육중한 몸을 어떻게 하면 쉽게 움직이실 수 있도록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태까지, 어르신은 몸져 누우신 후에 ‘움직이면 죽는다.’ 하는 생각으로 꼼짝도 않고 누어있거나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반신불수로 움직이지 못하셨던 몸뿐만 아니라, 어르신이 가진 이런 안타까운 생각이 움직이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몸에 살은 점점 불었고 장 운동은 되지 않아 하루 서너 번 씩이나 변을 보셨습니다.
저는 그 날부터 어르신께 반신불수도 이러저러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차근히 설명해 드린 뒤, 운동의 이점도 요모조모 알려 드리며 혼자 앉기 및 일어나기, 몸 흔들기, 방 닦기, 움직이기, 구르기 등 장운동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근육운동 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서너 번씩 보던 변도 운동으로 인해 하루 한번으로 줄어들게 되고, 살도 10kg 정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은 ‘제가 간 뒤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을 한다.’, ‘살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눈에 띄게 보이던 목 밑의 쳐진 살이 쏘옥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부은 듯 개구리 배처럼 볼록했던 배도 쏘옥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정신 지체 3급으로 말하기와 듣기에 어려움이 있는 아들과의 대화 에서도 많은 장애를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 청각 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는 입모양을 또박또박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차분한 마음으로 의사소통에 접근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해드렸더니, 할머니는 금세 예전과 같이 언성을 높이거나 성을 내지 않으셔서 아들과의 대화가 매우 부드러워지셨습니다.
할머니를 만나고 제가 가장 뜻 깊었던 일은 글을 가르쳐 드린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어르신께서 ‘글을 아는 것이 내 생애 가장 큰 소원 이다.’라고 하시는 말을 들은바가 있어, 글을 가르쳐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르신께 무슨 말을 가르쳐 드릴까 생각 하다가 직접 여쭈어 보니, 어르신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읽고 쓰는 것이 가장 원하던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한자 한자 장장 세 시간을 걸쳐 가르쳐 드리고 나니 어르신은 자신의 이름도 적고, 한명 한명의 자녀분들 이름 석 자를 쓰고 사랑한다고 그림을 그리듯이 쓰셨습니다. 내 아들 O OO 사랑한다. 내 아들 O XX 사랑한다. 내 딸 O YY 사랑한다……. 자녀분들 하나 빠짐없이 그렇게 적으시고는 같이 사는 아들의 이름과 사랑한다는 말을 또 다시 적으시더니 아들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어르신께서 ‘아들아 이것 좀 봐라’ 하니, 아들은 고개를 숙여 읽어 가더니 어머니의 목을 꼭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또 다시 글을 읽고 끌어안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셋은 어느새 눈물바다가 되었고 눈이 부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은 실컷 목 놓아 울고 난 뒤 ‘84년 만에 내가 글을 썼으니, 84년 만에 한이 풀렸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더 마음이 짜~안해져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드님도 내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또 울었는데, 제가 한 일이 너무 작아서 그런 말을 들으니 쑥스럽고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르신은 그 뒤로 ‘더 일찍 만났으면 내가 마당도 걸었을 것을······.’, ‘나라에서 공단을 통해 보내주는 요양보호사가 그 전에도 있었더라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하고 눈시울을 붉히시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우리 집에 계속해서 꼭 와야 된다고 부탁하시며 작은 미소를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께 이젠 오기 싫어도 오게 될 것 같고, 절대 오기 싫게 될 것 같지도 않다는 말을 해드렸더니, 할머니는 너무 기쁘시다면서 활짝 웃으셨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요양이란 개념을 넘어서 유대감이 싹 텄고, 어르신과 저는 서로 도움이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만난 뒤 수혜자의 변화된 모습을 위해 내가 그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수혜자들과의 대화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저는 그 분들의 아픔, 고통, 설움을 제 일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양보호사라면, 언제 어디서나 남을 이해하고, 또 수혜자와 요양보호사 사이에 적절한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그 분들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한다는 마음을 간직하며 지냅니다.
저를 필요로 하시는 분들을 위해 마땅히 노인 분들의 훌륭한 친구가 되어, 한 발자국 다가가고,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두 발자국 다가가고, 그들의 아픔까지 안아 줄 수 있기 위해 세 발자국 다가가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어 갑니다. 이 세계인구의 삼분의 일이 노인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그 분들을 위해 몸 성한 저희 들이 더 가까이, 가까이 다가간다면, 우리의 미래가 한층 밝은 빛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렇게 노인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회를 주신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그리 짧지도, 그렇다고 길다고 할 수 없는 이글을 읽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자료출처 : http://cafe362.daum.net/_c21_/bbs_list?grpid=1DsO9&fldid=Fc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