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 당선작 - 우리 작은 딸입니다 !
“우리 작은 딸입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대문을 열고 비좁은 통로를 지나 또 한번 굳게 잠긴 작은 대문을 열면 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어르신의 얼굴이 조금 열어둔 방문 틈으로 보입니다. 마치 제 막내딸이 제가 퇴근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반기는 듯이 말입니다.
“어서오너라, 어서오너라.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 딸 선옥이가 무사히 무사히 우리집에 들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어르신과 저의 일과는 이렇게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을 향한 기도로 시작 됩니다. 사실 종교가 다른 저로서는 이 기도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어르신이 기도드릴 때의 간절한 몸짓과 눈빛은 충분히 제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고도 남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시고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며 딸 하나를 혼자 키워내시다가 10여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어르신은 생계의 유일한 수단이었고 세상과의 소통 공간이던 가게의 문을 닫게 되면서 세상과 문도 닫게 되신 듯, 뒤이어 생계에 대한 책임을 떠맡게 된 딸 역시 어머님을 향한 극진한 보살핌으로 인해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생활인 듯 보였습니다.
제가 이 가정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8년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요양보호사 활동으로 방문 하게 되면서입니다.
어머니 간병으로 10여년의 세월을 보내다 보니 딸의 간병실력은 따라올 자가 없어보였고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교육을 받은 제가 오히려 그 따님에게 한수 배워야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었습니다. 방문, 거울, 냉장고, 가구, 벽면이 되는 모든 곳에는 어머니 간병에 필요한 메모가 가득했고, 생활비의 대부분이 어머니 간병에 필요한 물품과 간식으로 소요되는 그야 말로 심청이 뺨칠만한 대단한 효심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 활동 후 처음 일주일은 딸이 직장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에 와서 저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가르치느라 밥 먹을 새도 없이 들렀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매일 매일 간식과 식사를 챙겨드리는 순서와 방법, 그리고 요양일지를 별도로 작성해서 시간시간 마다 기재를 하라고 하는 등 이것저것 소소한 것까지 파고드니 나름대로 교육을 받고 온 저로써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라 생각하자 여유 있게 마음먹게 되었고 또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딸의 효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니 배울 점이 많아 본 보기로 받아들이자 했더니 얼마가지 않아 얼음공주 심청이 딸이 마음을 툭 열어 속내를 이야기합니다.
“내가 좀 까다롭지요, 엄마도 많이 예민한 편이고요, 생각보다 적응 잘하시네요. 내가 이래뵈도 엄마 아픈 것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별의 별 사람을 다 겪어보다 보니 안 그렇겠어요. 엄마도 좋아하고 나도 선생님 오고 나서 몸도 편코, 마음이 놓입니다. 사실 여기저기 안 아픈데가 없었는데 요양보호사선생님 덕분에 엄마 수발 부담이 덜어지니 아픈 것도 덜 아픈 것 같네요. 힘들겠지만 우리 엄마 잘 부탁해요.”
그렇게 굳게 닫혀있던 딸의 마음이 활짝 열리고 어르신과의 생활도 조금 익숙해질 무렵이었습니다. 건강보험공단 소속직원이 복지용구구입 사실 확인 차 방문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어르신과 저를 보고 “두 분 사이가 참 다정해 보이세요. 어찌 보면 닮은 거 같기도 하고.”라며 웃자 어르신이 저를 보고 갸우뚱해 하셨습니다.
미리 설명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낯선이들의 방문도 어색하고, 또 무슨 일로 웃는지 무척 궁금해 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더더욱 그런가봅니다.
“어르신! 이 분이 어르신하고 저하고 다정해 보인대요! 닮았대요!”라고 그나마 청력이 남아있는 귀에 대고 말씀 드리자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이고, 우리 딸 아닙니까! 우리 선옥이는 내 딸입니다. 작은 딸요!”하며 환하게 웃으시는데 제 눈에는 왜 눈물이 맺히는지.
오늘도 마치는 시간은 이미 훌쩍 넘겨 집에 간다 인사를 드리려 하니 발을 동동 구르십니다. “가지말지! 여기서 자고 여기서 살지!”하시면서 팔을 붙드시면 저는 “집에 가서 신랑하고 애들 밥 챙겨주고 얼른 올게요! 금방 갔다 올게요.”하며 달랩니다. 그러면 또다시 우리 어르신의 기도는 시작됩니다.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부처님 우리 선옥이가 밖에 나가서 무사히 무사히 볼 일 보고 우리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돌봐주십시오. 제발 우리 딸 선옥이 꼭 지켜주십시요”라고 말이죠.
자료출처 : http://cafe362.daum.net/_c21_/bbs_list?grpid=1DsO9&fldid=Fc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