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필요한 어르신의 주거환경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들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가, 정작 사고가 일어나면 그제서야 뒤늦게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어르신들이 나이가 들어 가며 바뀌는 필요 조건에 맞춰 집안 환경을 바꾸곤 한다. 아이를 낳는 데에는 9개월의 준비기간이 주어지지만, 어르신 곁을 계속 지켜야 하는 상황은 9분의 준비 기간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그 만큼 어르신의 신체적, 정서적 변화 때문에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미 치열한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자식세대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가게 되는데,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지금의 간단한 조치가, 미래의 큰 불화를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무릎 관절 상태가 악화되어 화장실 변기에서 일어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어르신의 경우, 어르신이 몸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장실 안의 물건들이 위험 요소로 바뀔 수가 있다. 창틀이나 수건 걸이, 또는 샤워커튼을 붙잡게 될 수 있는데, 한 두 번이야 그런 물건들이 버틸 수 있겠지만, 매번 몸을 일으키기 위해 무게를 가하게 되면 결국에는 부러지고 뜯어지면서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사고가 일어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평소에는 위험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집안 구석 구석의 물건들이 어르신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집안 환경에 대해 신경을 쓰고 바꾸게 되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 예방책 보다는 사고에 대한 대응책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시니어 홈케어 전문기업이 어르신의 집을 방문할 때 확인하는 안전 점검 리스트 중에서 중요한 요소 몇 가지를 골라서 대응책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어르신이 잘 다니는 동선에 알맞은 밝기의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지, 그리고 넘어질 위험이 있는 장애물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계단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신경이 필요하다. 보호자가 봤을 때 별 것 아닐 수 있는 전기코드 한 개, 빈 물통 한 개가 어르신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에, 동선상의 물건들은 최대한 치우고 카펫이나 돗자리는 미끄럼방지 테이프를 바닥에 붙이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은 자연스레 감퇴한다. 이를 감안하여 육안으로 충분히 구별 가능한 여러 가지 색깔로 집안 곳곳을 꾸미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선명한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냉, 온수를 표시한다거나, 부엌에서 사용하는 식기와 도구들도, 종류에 따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하면,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어르신의 상황에 맞도록 집안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입장에서 집을 살피는 것 외에도, 어르신과의 대화를 통해, 생활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도 필수이다. 평생 집에 먼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던 어르신의 집이 어느 순간부터 그 말끔함을 잃어버렸다면, 어르신의 평소 청소 습관을 고려하여 차선책을 제시하자. 예전에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아서 청결함을 유지했다면, 최근에 많이 나오는 탈, 부착이 가능한 가벼운 대걸레로 조금 더 쉽게 청소를 만들어드리면, 청소 자체에 부담을 느껴서 엄두도 내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조치들이, 우리의 어르신들이 떠나기 싫어하는 보금자리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특성상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당신들의 몸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 잘 감안하여, 많은 돈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지금 집안 환경을 바꾸는 것이 미래에 어르신뿐만 아니라 보호자가 겪을 수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상당 부분 줄여줄 수 있음을 잘 이해하여, 어르신과의 느리지만, 아름다운 인생의 마지막 동행을 시작해 보자.
박은경 (주)시니어파트너즈/홈인스테드코리아 대표
한국재경신문 2009.09.02 07:53
http://news.jknews.co.kr/article/news/20090901/235336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