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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고 노래하는 ‘백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1. 11:56
치매 앓는 언니·오빠들 웃다
“아빠, 엄마는 어디 있어요? 사람들은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데요.”
“껄껄껄. 아니야. 엄마는 이 꽃밭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31일 오후 2시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공릉종합사회복지관의 데이케어센터. 동화책 ‘나비 엄마의 손길’을 맛깔나게 읽는 소리에, 노인들의 웃음과 박수도 이어졌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17명의 경증 치매 노인들(노인 장기요양보험 1~3등급)이다.
그런데 동화 읽기와 인형극을 즐기는 이들만 노인이 아니다. 동화 속의 아빠와 아들 역할을 연기하는 최부자(65)씨와 김정숙(63)씨, 이상순(61)씨 등 3인 1조 모두가 ‘노인’이다. 이날 행사는 평균 나이 66살의 이야기꾼 24명이 참여한 ‘책 읽어주는 실버 문화 봉사단 북북(Book Book)’(북북)의 첫 공식 공연이었다. 지난 25일 발대식을 한 이들은 올해 말까지 7개 조로 나눠 지역아동센터와 노인시설 등에 ‘문화봉사’을 나갈 예정이다. 사단법인 한국문화복지협의회가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을 한다.
이들은 책만 읽어주는 게 아니다. 김정숙씨가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세요?”라고 묻자,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윤용섭(81)씨가 가수 고은봉의 ‘선창’을 외쳤다. 곧바로 “울려고 내가 왔던가~”라며 노래가 이어졌다. 이들은 관객들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 ‘오빠, 언니’로 불렀다.
“아~ 잘한다”라며 흥겨워하던 윤씨는 결국 직접 나훈아의 ‘찔레꽃’을 부르겠다고 나섰다. 자식을 키우며 불렀던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에서부터 옛 유행곡까지 섭렵한 이야기꾼들 덕에 어느덧 작은 축제마당이 펼쳐졌다.
이상순씨는 “외국인 안내나 노인 무료급식 등 28년째 갖가지 봉사활동을 해왔다”며 “‘실버’와 ‘책’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북북에 참여했다”고 했다. 최부자씨와 김정숙씨도 다른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김정숙씨는 “책을 읽고, 읽어주면서 함께 책 내용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며 “문화적 자극을 통해 노인들이 생활에 활력소를 얻고 치매 치유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들은 첫 무대를 위해 지난 7월부터 2개월 동안 책 읽는 법과 인형극 실습 등 30시간의 문화봉사 교육을 따로 받았다. 북북을 운영하는 김은진 한국문화복지협의회 실장은 “좀 더 젊은 어르신이, 좀 더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찾아가다보니 남보다 더 쉽게 마음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마련된 것 같다”고 말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3741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