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찾아든 설렘, [라벤더의 연인들]

영국의 해안가 마을. 자넷(매기 스미스)과 우슐라(주디 덴치) 자매는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어느날 두 자매는 바닷가에 쓰러져 있는 젊은이를 발견하고 정성껏 치료한다. 청년의 이름은 안드레아(다니엘 브륄). 폴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 지난밤 폭풍에 난파돼 마을까지 떠밀려왔다. 두 자매는 안드레아를 돌보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그러던 중 우슐라는 안드레아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자넷은 그런 동생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한편 이 마을로 휴가를 온 올가(나타샤 매켈혼)가 안드레아에게 접근하자 두 자매는 긴장한다.
[라벤더의 연인들]은 노년에 접어든 두 여인의 무게감만큼 은은한 풍미를 자랑한다. ‘늦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나, 최근 쏟아져 나오는 중장년 층의 사랑과는 그 공기가 다르다. [죽어도 좋아], [경축! 우리사랑]과 같은 영화들이 ‘황혼기에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는 유쾌한 반란이었다면, [라벤더의 연인들]은 사랑에 대해 좀더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남녀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섹슈얼한 분위기는 전혀 없으며, 잔잔한 동화를 보는 듯 아기자기하고 소박하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노년의 ‘사랑’보다는 노년의 ‘삶’에 비중을 두는 듯 보인다. 노년에도 사랑의 설렘이 찾아들 수 있다는 것은 물론, 한 청년의 등장으로 두 노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것에 주목한다. 그래서일까. 안드레아가 어떤 연유로 난파됐는지는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애초부터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안드레아의 존재는 고요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는 하나의 소재로서의 의미가 더욱 크다.
그렇게 그녀들과 안드레아의 일상은 어촌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처럼 차분히 흘러간다. 자칫 영화는 졸음의 유혹에 빠질 만큼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채워지지만, 인물의 미세한 심리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특히 카메라는 두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담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우슐라는 안드레아를 만난 후,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안드레아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신경전은 미소를 부르고, 그가 떠난 뒤 아이처럼 소리내 우는 우슐라의 모습은 맑은 울림을 일으킨다. 짧은 시간 진심을 다해 안드레아를 사랑했던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도 눈부신 까닭이다.
[라벤더의 연인들]에서는 ‘눈과 귀가 즐겁다’는 말이 습관적 수사만은 아니다.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해안 마을 ‘콘월’을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영상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여기에 [레드 바이올린]의 연주자 조슈아 벨의 청아한 연주가 어우러져 감성을 자극한다. 뒤늦은 사랑에 설레는 동시에 당혹감을 느끼는 동생 역의 주디 덴치, 사랑에 빠진 동생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언니 매기 스미스 모두 연륜 묻어나는 연기로 자연스럽게 스크린을 채운다.
스포츠투데이 2008.07.03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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