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9988234 사회' 만들기


1년에 반년꼴로 느는 기대 수명
행복한 장수촌 설계 서둘러야

통계청이 최근 한국인의 2010년 기대 수명을 발표했다. 79.4세다. 내년 신생아는 평균적으로 여든 가까이 장수한다는 의미다. 더욱 주목할 것은 연장 추세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1985년 66.8세, 90년 69.8세와 비교해도 경악스러울 정도로 급박하다.

인간의 수명 추세가 어찌 전개될까. 전망은 제각각이다. 미국 노화생물학자 스티븐 어스태드는 2150년 이전에 150세의 장수자가 나올 것으로 본다. 한술 더 떠 거의 무한대로 늘어난다는 극단적 낙관론도 없지 않다. 1980년 ‘지능이 있는 기계의 시대’를 통해 10년, 20년 후의 세상을 통찰력 있게 내다본 미 발명가 레이 커즈윌이 대표주자다.

인간의 기대 수명은 18세기에 해마다 며칠씩 느는 데 그쳤다. 19세기에는 몇 주씩이다. 현대의 증가치는 1년에 100일이 넘는다. 커즈윌은 이를 토대로 기대 수명이 해마다 1년씩 늘어나는 날이 머잖아 당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런 시대가 10년 내에 실현된다는 호언도 불사한다. ‘영생’을 꿈꾸는 셈이다. 허튼 소리일까.

미 컴퓨터과학자 제이런 러니어는 커즈윌에 동조한다. 분자세포 차원 등의 실험에서 노화의 중지 가능성이 이미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비용 문제다. 러니어는 “우리 중에서 부자는 거의 죽지 않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1985∼2010년의 한국 통계로 보면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기대 수명이 25년 만에 12.6년 늘었다. 이미 해마다 반년꼴이다.

물론 주류 학계는 커즈윌 등의 낙관론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예전보다 오래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연장된 것은 평균수명이지 절대수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인간과 동물’에서 절대수명의 연장이 어렵다는 관점에 한 표를 던지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유전자 시각에서 본 자연선택론에 따르면 한 생명체를 만들어 끝까지 유지하는 것보다는 활발한 번식을 해서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도록 한 다음 제거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번식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

과연 어느 쪽이 맞을까. 함부로 가늠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자명한 사실은 하나 있다. 행복한 장수촌 사회를 일구기 위한 기본설계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란 사실이다.

옛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인간 개체 입장에선 장수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반례가 많으니 탈이다. ‘최근 5년간 자살통계’부터 그렇다. 60세 이상 인구의 자살자가 매년 평균 4300명을 웃돈다. 개똥밭보다 못한 세상에 절망하는 노인이 수두룩하다는 방증이다. 독거노인이나 노인의료비 등도 갈수록 는다. 65세 이상 노인의료비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웃돌았다. 사방에 부정적 지표가 널려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급이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00년 7.2%에 달해 유엔의 고령화사회 기준을 훌쩍 넘더니 올해에는 10.7%에 도달했다. 2050년이면 노인인구 비율이 38.2%에 달한다고 한다. 사회적 충격이 대단할 것이다. 기대 수명의 그늘이 여간 짙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인 문제가 중차대한 관심사로 다뤄지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말로만 ‘어르신’ 운운할 뿐 실제 처방은 영 시원치 않다. 보건복지 안전망은 두루 열악한 수준이다. 치매 노인 등이 신세를 지는 요양원 시설부터 그렇다.

노인 문제 해결의 열쇠인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 65세 이상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30.6%에 그쳤다. 전년보다 0.7%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노인 생활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증표다. 빈곤, 질병, 고독, 역할상실 등의 근본적 고민을 해소할 대책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철 지난 유행어에 ‘9988234’란 말이 있다. 변형도 많다. 원형이든 변형이든 99세까지 건강(팔팔)하게 살고 큰 고생 없이 세상을 뜨는 것이 노년의 꿈이란 뜻이다. 그 꿈이 이뤄지도록 정치권이 행정부와 함께 앞장서야 한다. 노인 표의 위력이 커지는 형국이니 정치공학적 관점에서도 한눈팔 때가 아니다. 사회복지 차원의 당위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장수가 저주로 변질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승현 논설위원

세계일보  2009.11.18 20:44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091118004142&c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