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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간과 쓸개

강태공은 희수(喜壽)의 나이에 천하를 거머쥐었다. 곧은 낚시로 세월을 낚으며 고목에 꽃피는 날을 참고 기다린 덕이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고 집안을 돌보지 않아 아내는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고 한다.

후일 아내는 재상이 된 남편을 만나 지난 일의 용서를 빌었다. 강태공은 물동이를 쏟아놓고 본래대로 물을 담아 보라고 했다.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세월을 과거로 되돌릴 수도 없음을 비유적으로 충고했던 이 고사는 삼천년을 인구에 회자되었던 화두다.

후일 주나라 문왕이 인재를 찾아 떠돌다 위수(渭水)에 곧은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을 만난다. 육도를 지은 지략가인 그는 문왕을 도와 주(周)나라를 세우고 재상이 된다. 결국 곧은 낚시로 천하를 낚은 것이다.

따라서 강태공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부분 노인들은 강태공이 아니다. 나이 들면 신체기능이 퇴화하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소용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기미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퇴직자들은 침묵하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하지 않고 살아도 배탈 나지 않는 법을 알아야 홀로 선다. 고독해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도 익혀야 그나마 체통을 지킨다. 혼자 밥 먹고 잠자고 독백을 씹어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 법을 터득하면 금상첨화다.

실직자에게 과거란 존재할 수 없다. 직장도 학력도 잘나가던 친구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야 정신위생이 건강해진다. 그걸 못하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제풀에 넘어지는 '뇌졸중'으로 추락한다.

술 취한 지구가 거꾸로 돌지 않는 한 퇴직자의 봄은 없다고 어느 시인은 비관적으로 노래했다. 이리저리 채이고 짓밟혀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목 꺾고 허리 접으며 살아야 한다고 푸념한다. 따라서 퇴직자는 가치관도 철학도 없는 숨 쉬는 '미라'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최근 젊은 여류작가는 '간과 쓸개'라는 소설을 썼다. 주인공 '나'는 67세의 간암말기환자로 대책 없이 늙어버린 노인이다. 가진 땅을 모두 팔아 자식들에게 다 나누어주지만 치료는커녕 기댈 자식조차 없다.

90이 넘은 누님은 쓸개질환으로 신음하지만 탁구공마냥 처 넘기는 자식들 사이에서 며칠이 멀다하고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닌다.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다 노후대책 없이 그냥 늙어버린 사람들이다.

강태공의 금의환향이야 희귀한 일이지만 시인의 악담(?)도 오답풀이는 못된다. 젊은 소설가가 '죽음이 곧 삶이라'는 반어도 해학적이다.

적어도 죽는 날까지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도 달라진다. 이른바 '위상기하학'이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한번 비틀어보면 전혀 달라지는 공간이 생긴다.

예를 들어 도넛을 양손으로 비틀어도 잘라버리지 않는 한 도넛은 그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비틀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화이트헤드의 '신'의 개념도 같다. 신은 존재양식에 따라 그 모양을 바꾼다. 사람은 사람모습으로 온갖 사물은 그다운 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제 모습 그대로 신의 형상이며 전능하다는 것이다. 매사에 부정적인 자들에게 주는 경고성 메시지이기도 하다.

최재우도 불연기연(不然其然)을 역설한 바 있다. 세상일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긍정과 부정의 세계로 나누게 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비결정적이고 비시원적이란 것이다. 하이젠베르그의 장(場)이론으로 파악한 탁견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5백만을 돌파해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중 42%의 노인들이 일자리를 원하지만 하늘에 별 따기다. 회전의자의 추억과 편견을 버리지 않는 한 새로운 세상은 없다.

노인이 불행하다는 것은 국가장래도 불행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책 없는 노인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절실한 이유이다. 간도 쓸개도 망가져서 깡통처럼 버려지는 늙은이들은 더욱 그렇다. 물론 노인들도 반전하는 뫼비우스고리처럼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제갈태일(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