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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일흔에 발로 트는 수도꼭지 발명…10년간 열정쏟아


"살아 있으면 세상에 뭔가 보여줘야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면 되나요."

설거지하는 며느리에게서 얻은 아이디어 하나로 칠순을 넘어 벤처기업을 만든 '여장부'가 있다.

손이 아니라 발을 이용하는 수도꼭지인 '발바리'를 만드는 '이지벨브' 김예애 사장이다. 김 사장은 올해 79세다. 서울 종로 5가에 위치한 이지벨브 사무실에 들어서자 곱게 화장하고 분홍색 셔츠로 한껏 멋을 낸 김 사장이 얼굴 가득 환한 웃음부터 던졌다.

"내 나이를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일을 하면 쉽게 늙지 않는다고 하죠. 저는 자는 시간도 아까워요. 그 시간에 연구를 더 하고 싶거든. 매일 내일을 생각하며 바쁘게 사니까 늙을 틈도 없는 거예요."

김 사장은 서울 한 중학교에서 가정 과목을 가르치던 교사였다고 한다. 63세에 교직생활을 접고 은퇴한 뒤 7년쯤 흘렀을까.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설거지를 하던 며느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운명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싱크대로 줄줄 흘러내리는 수돗물이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설거지 중에 손으로 수도꼭지를 잠갔다 열었다 하기가 불편하니까 그냥 물을 흘려보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며느리에게 '발로 조절하는 수도꼭지를 만들면 어떨까'했더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오기가 발동한 거죠."

김 사장이 본격적으로 개발에 나선 것은 1999년. 이미 칠순 나이였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화하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자녀들은 쌍수를 들고 말렸다. 그녀는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무작정 서울 을지로 근처 용품점을 헤매고 다니며 수도꼭지를 수집했다. "수십 개를 사다가 다 뜯어보니 원리는 비슷하더군요. 내 아이디어로 상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내 얘기를 믿어줘야 말이지."

수도꼭지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집에서 손자나 보시라'는 대답은 차라리 나았다. 아예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김 사장이 마침내 실마리를 찾은 것은 을지로 뒷골목의 허름한 한 철물점이었다. 한 작업자가 수도꼭지를 뜯어보며 연구하고 있기에 슬그머니 다가가 말을 건넸다.

"처음엔 상대도 안하더라고. 그래도 삼고초려라고 계속 찾아가니까 일단 얘기는 들어줍디다. 그 사람도 얘기를 들어보니 허황된 얘기가 아니란 걸 느낀 거야. 그래서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만들어 보라고 시킨 거죠."

이후에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3~4년을 제품 개발에 매달렸다. 김 사장은 "이거 만드느라 그동안 근근이 모았던 2억원을 다 썼어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첫 완성품이 나온 시기는 2002년. 하지만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납품을 해야 했지만 거래처도 없었고, 영업사원도 없었다.

"몸으로 부딪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길을 지나다가 건물이 올라가는 것만 보면 무조건 사장을 찾아가서 매달린 거지. 집 근처 빌라를 건축하려는 사람을 설득해 첫 납품에 성공했는데 그때 어찌나 기뻤는지 몰라요."

이지벨브 소속 영업사원은 지금도 세 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아르바이트생에 가깝다. 특허를 신청하고 회계 장부를 정리하는 일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김 사장은 "닥치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사장 지론이다.

'하면 된다'는 정신이 통해서일까.

김 사장은 "이제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사무실 한쪽 벽에 줄지어 내걸린 특허권과 실용신안권이 문득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또래 노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다고 했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뭐예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사는 거죠.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 연장을 하는 게 아니에요."

김 사장은 주위를 둘러보면 노인도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 빈 병을 줍는 할머니가 있어요. 하루는 그 할머니가 절 보고는 부끄러운지 피합디다. 내가 그래서 그 할머니 붙잡고 그랬어. 참 훌륭한 일을 하신다고.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일을 찾는 것이 최선이에요. 그 분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이지벨브 사무실 근처에는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탑골공원과 종묘가 있다. 김 사장은 출퇴근길에 그곳에 모인 노인들을 볼 때면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화투 치는 노인들을 보면 손놀림이 기가 막혀요. 그 능력으로 공장에서 볼트를 조인다거나 하다 못해 봉사활동 단체에서 배추 다듬는 일이라도 돕는다면 얼마나 생산적인 행동인가요. 능력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것은 다 핑계죠. 꼭 돈을 받지 않더라도 마음만 있다면 할 일은 도처에 널려 있어요."

성공한 노년 기업인으로 상도 많이 받고 매스컴도 많이 탔지만 김 사장 욕심은 끝이 없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새로운 제품 도면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김 사장은 최근 전자센서를 부착한 새로운 수도꼭지 모델을 개발했다. 장차 세계 시장에 제품을 납품할 원대한 꿈도 꾸고 있다.

"내게 많은 날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뿐이에요."

매일경제  2008.07.04 0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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