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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기타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 당선작 - 봄이 오는 소리

우수상 - 유혜정

봄이 오는 소리

하늘이 맑고 맑은 빛을 쏟아내고, 바람결에 꽃향기가 가득하던 어느 봄.

 사내는 한 품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여인과 백년해로를 약조했다. 쳐다보면 닳을까, 만지면 부서질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따뜻한 나날이었다.

 둘 사이에 바라던 예쁜 딸이 생겼다. 아내는 아들이 아닌 것에 미안해했지만, 사내는 아내를 쏙 빼닮은 딸아이가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인 듯 기뻐했다. 사내는 밤 근무를 자처하며 더욱 열심히 일했다.

 ‘곧 추위가 닥치겠군!’ 사내는 남색 점퍼깃을 여미며 생각했다. 석양이 물들던 달동네 언덕배기를 연탄이 한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 듯 올라갔다. 그런 사내의 등이 더없이 넓고 듬직해보였다. 

 밤새 눈이 내리던 날. 칼바람을 피할 보금자리 한 칸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사내는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일자리로 돌렸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아내는 불구멍을 막고 방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덜 춥도록 딸을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오전 8시, 근무를 마치고 난로 앞에서 잠시 졸고 있는 사내를 향해 한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거시기... 애기 아빠! 집주인한테 전화가 왔어. ○○병원에 후딱 가봐유.”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사내는 눈을 비비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따님 일은 유감입니다. 아주머니의 경우, 뇌손상이 크게 온 것 같습니다. 생명을 잃지 않은 것은 다행입니다만, 어떤 장애가 올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주저앉아버린 사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렇게 작은 생명 하나가 갔다. 그의 아내는 고압산소치료실에 들어간 후 의식을 찾아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그에게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

 쌓여가는 병원비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다시 두식구가 되어 돌아오는 길 아내를 바라보는 사내는 흐르는 눈물을 참고 애써 웃었다. ‘그래! 다시 살아보자!’ 방에 아내를 두고 점심을 해결할 수 있게 상을 차려 밥보자기로 덮어두고 집을 나섰다. 멍하게 누워있던 아내는 불안에 떨며 그에게 매달렸다. 한참 실강이를 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당장 나가지 않으면 아픈 아내를 밥마저 굶기게 된다는 생각에 잠시 지체하기가 어려웠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말썽이 생겼다. 커다란 아내의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었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깨도록 밤새 소리를 질러댔다. 일을 다녀온 어느 날, 아내는 집에 없었다. 놀란 사내는 한참을 아내를 찾아 헤맸다. 아내는 헝크러진 머리를 하고, 흙투성이가 된 채 웃음을 흘리며 골목 구석에 서있었다. 다음 날, 방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졌다. 사내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루는 대소변을 온방에 바르고, 심지어 입가에 묻어있었다. 어느 날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간질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업고 뛰어야 했다. 사내는 점점 지쳐갔고, 넓은 등은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41년의 세월이 흘렀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7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논산운영센터 문을 빼꼼히 열고 “죄송합니다. 좀 도와주세요.”하며 한 왜소하여, 유리문을 여는 게 버겁게 느껴지는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한 여름이라 땀범벅이 되어있어 일단 시원한 음료수를 내어 드리고 상담 테이블에 앉으시기를 권했다. “아니... 괜찮은데...” 하고 미안한 기색을 보이신다. 재차 권하며 뚜껑을 따 드리니 숨 쉴 새도 없이 한 번에 들이키셨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하시러 오셨어요?”하자, “아니... 그게... 나는 보험 들 돈도 없고, 누가 여기 가면 도와준다고 하기에 왔는데, 그런 걸 들어야 하는 건가?” 하시며, 들고 오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반쯤 일어나신다. “아니에요, 어르신. 제가 설명을 드릴 테니 잠시 앉아보시겠어요?”하며 붙잡자, “이거 놔요. 내가 속아서 온 것 같으니.”하시며 돌아서 나가신다. ‘설명도 안들어보시고는... 머야?’ 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서 홍보를 꾸준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 중에도 사설보험을 가입해야 하는 줄 알고 나에게 물어왔던 일이 기억이 났다. 혹시 장기요양이 꼭 필요한 분인데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 오해하고 가시는 건 아닌지, 그래서 소외계층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어 바로 나가보니 다행히도 아직 엘리베이터가 도착 전이라 앞에 서계셨다. 벌떡 일어나신 것이 머쓱하셨던지 눈을 맞추지 못하고 헛기침만 하고 계신다. 웃으며 할아버지 앞에 나가갔다. “어느 분이 편찮으세요? 주위에 치매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계신가요?” 묻자, “우리 집사람이 좀 아파서...”하신다. “할아버님 사시는 동네가 어디세요?” 하자, 답하시며 “어떻게 도움받는 방법이 있는 거요?”하고 물으신다. 잠시 들어가시자고 이야기해서 간신히 할아버지의 발걸음을 돌렸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 드리고 신청 및 등급판정 진행 절차를 안내하자 “그러니까, 이게 보험공단에서 하는 일이구먼?”하시며, 안심하는 기색을 비치시고는 신청서 작성을 하고 “잘 부탁혀. 고마워.”하며, 집으로 돌아가셨다.

 삼일 후 유선으로 방문시간을 약속했다. 푹푹 찌는 여름 날씨가 출장가려는 의지를 꺽고 싶어했지만, 어림없다. 시원한 사무실 에어컨의 유혹을 뿌리치고 장하다는 격려를 서로 주고 받으며 우리는 출동(?)했다. 정자나무를 끼고, 오른쪽 골목 끝으로 들어가니 낱장 양철로 대문 흉내를 내고,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질 것 같은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 풀이 키만큼 자라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 맞나? 우리가 잘못 찾아온 건가?’ 생각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계세요?”하고, 동행한 직원이 말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는데,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할아버지 뒤에 어떤 사람이 귀신처럼 서 있었다. 바로 대상자인 할머니였다.

 20대 후반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하여 뇌손상이 발생하였고, 인지기능 저하와 아무 때나 소리를 지르고, 왔다갔다 하는 등 다양한 행동변화가 동반된 상태였다. 또한 언어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지시를 조금씩 이행하는 정도였다. 과거에는 거동이 괜찮았으나, 계속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반드시 지시를 해야만 움직이기 때문에 신체 움직임이 거의 없어 각 관절이 대부분 굳어져 있어 구부정한 자세이고, 얼굴이 하얗고 마침 긴 머리를 풀고 계서서 더욱 귀신같이 보였던 것이다.

 불편한 팔 다리로 마당과 방을 맨발로 들락거리는 할머니 때문에 방에는 흙이 잔뜩했다. 재래식 집 구조라 부엌과 화장실이 실외에 위치하고 있고, 겨울철에는 웃풍이 너무 세서 불을 때도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 마침 늦은 아침을 드시고 계셨는데, 밥에 된장이 전부였다. 의료급여자로 정부지원금이 나오고 있고, 병원비 감면혜택이 있어 그나마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하신다. 자녀도 없이 41년을 할아버지 혼자서 할머니 옆을 지켰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세수나 목욕 등은 해주고 있으나, 고령이라 힘이 부치고, 당신 또한 심장질환과 관절염, 요통, 백내장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옷벗고 입기, 세수, 양치질, 목욕, 방밖으로 나오기, 대소변 조절하기, 머리감기 등과 집안일, 빨래, 상차리기, 금전관리, 전화사용, 물건사기, 교통수단 이용, 근거리 외출, 약 챙겨먹기 등 부분에 모두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조속한 조치가 필요했다. 빠르게 의사소견서 안내를 하고, 제출 독려한 덕에 신청한 지 2주 후 등급판정위원회의에서 최종적으로 2등급으로 결정되었다. 장기요양인정서를 가지고 다시 방문하여, 의료급여자이므로 시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과 희망에 따라 재가급여 이용시 7.5% 본인부담금에 대한 설명을 하자 비용문제로 한참을 망설이셨지만, 결국 재가장기요양기관과의 상의 끝에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대로 방문요양 주 2회 (150분 이상~180분 미만), 방문목욕 월 3회(차량이용) 이용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면서 “유주임님 말을 믿고 따라야지요. 나도 딱 그만큼 필요한 것 같고...” 라고 말씀해주셨다. 비용과 필요시간 사이를 고민해가면서 이용계획서를 작성한 것이 상황에 적절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요양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조사한 담당자가 제시한 이용계획서보다 과다한 경우가 많아서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조사자로서의 위치, 케어플랜의 전망에 대해 고심하던 차였는데, 이렇게 조사자를 판단을 믿고 따라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방문요양을 제공받은 다음 날 어르신을 다시 찾아뵈었다. 몰라보게 깔끔해진 집모습에 놀랐다. 요양보호사 실습생들과 함께 나와 마당에 풀을 모두 베고 관리해 준 것은 물론, 할머니 이발에 목욕까지 정말 애를 많이 써주셨다. 할머니는 그날 오랜만에 소리 지르지 않고 편안한 밤을 보냈다고 하신다. 이런 변화에 할아버지는 희망의 빛을 보았다고 하시며, “우리 마누라, 시집올 때처럼 이쁘네.”하신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밝은 얼굴에서 하늘이 맑고 맑은 빛을 쏟아내고, 바람결에 꽃향기가 가득하던 어느 봄. 그 봄이 다시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자료출처 : http://cafe362.daum.net/_c21_/bbs_list?grpid=1DsO9&fldid=Fc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