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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기타

3.3㎡에 갇힌 ‘고단한 황혼’ “잘 팔리는 건 소주 하나뿐”


9일 오후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한 독거노인이 TV를 보고 있다. 각종 생활용품이 놓여 있어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자리만 남아 있다. [최승식 기자]

 

서울역 맞은편 남대문경찰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0여m를 들어가면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식당 옆 골목을 따라 올라가니 30~40년 된 듯한 낡은 4층 건물들이 나타났다. 서울 동자동의 쪽방촌이다.

65세 이상 독거노인만 300여 명, 혼자 사는 사람은 2000~3000여 명 된다. 건물 한 곳에 들어서니 입구에 골판지가 널려 있다. 한 층에 3.3㎡ 남짓한 쪽방 14개가 있다. 이 건물에는 지하 1층을 포함해 5개 층에 70여 명이 산다.

박일춘(71) 할아버지는 2층이 집이다. 3.3㎡에 불과한 방에는 TV·냉장고·밥솥이 놓여 있다. 박 할아버지는 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직접 밥을 해서 먹는다. 반찬은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 갖다 주는 것과 김치가 전부다. 부엌은 따로 없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층별로 공동으로 사용한다.

박 할아버지가 정부로부터 받는 돈은 한 달에 55만원. 그나마 중풍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해져서 이곳에 사는 다른 독거노인보다 10여만원을 더 받는다. 박 할아버지는 월세로 16만원을 내고 적금을 월 10만원 넣는다. 나머지는 병원비와 생활비로 쓴다고 했다. 식사는 대부분 방에서 해결한다.
 
가끔 외식은 하지만 근처 식당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냉면 한 그릇을 먹는 정도다. 그는 “노인 대부분이 비슷하게 생활한다”며 “돈이 없어 물건을 살 수도 없다”고 했다. 근처에는 조그마한 구멍가게 이외에는 상점이 거의 없었다.구멍가게 주인은 “잘 팔리는 것은 소주 하나뿐”이라며 “독거노인의 80~90%는 매일 술을 마신다”고 했다.

김순옥(76) 할머니는 심한 두통에 시달려 한 달 동안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방에서 밥을 해먹을 뿐이다. 김 할머니는 “한 달에 40만원 나오는데 월세 20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비로도 부족하다”고 했다.
 
2년 동안 독거노인을 관리하고 있는 용산구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이종녀씨는 “단돈 1만원도 저축한 돈이 없어 정부 지원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다른 곳의 쪽방이 없어지자 이곳을 찾아오는 노인도 많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8.09.10 06:16

http://news.joins.com/article/3293087.html?ctg=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