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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광수 씨는 친척들과 함께 해남 인근 선산으로 벌초를 다녀왔다. |
벌초, 그 의미를 알다
추석을 20여 일 앞둔 이맘때면 걱정이 하나 생긴다. 바로 연례행사처럼 행해지는 ‘벌초’ 때문이다. 하고나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만 모처럼 쉬는 주말을 쪼개기란 쉽지만은 않다. 특히, 고향집이 멀기라도 하면 교통비에 이것저것 드는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벌초를 다녀본 이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묘가 명당자리를 찾아 도로변이 아닌 산줄기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수풀이 우거진 곳을 낫과 예초기로 길을 내면서 산행을 하다보면 벌초를 하기 전에 진이 다 빠져버린다. 더욱이 올해는 추석이 예전보다 10여 일이나 빨라 더운 뙤약볕에 예초기와 낫, 성묘용품, 얼음물, 구급상자 등을 짊어지고 선산을 찾아 다녀야 하니 일 년에 한 번이라고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벌과 뱀, 예초기 등 각종 사고의 위험도 있으니 반가움 보다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하지만 이맘 때가 되면 항상 벌초를 하느라 예초기 소리의 요란함이 온 산에서 왱왱거린다.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일이지만 무엇이 우리를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게 만드는 지 추석을 앞두고 ‘벌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벌초에도 ‘짬밥’이 있다
지난 주말 고향집이 있는 해남 선산으로 벌초를 다녀온 이광수(35·유촌동)씨. 지난해 결혼을 한 이 씨는 결혼도 했겠다, 올해는 잡일에서 벗어나는 속칭 ‘짬밥’ 상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도 막내로 ‘갈퀴질’에 온갖 잡일을 도맡아야 했다.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한 것도 억울한데 막일 아닌 막일까지…. 일 년에 한 번하는 벌초지만 하고나면 2~3일씩 허리가 아프다”며 “남들이 보기에는 예초기를 매지 않아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갈퀴질이 더 힘들다. 벌초를 쉽게 볼 일이 아니다”고 하소연 했다.
이 씨네는 매년 10명의 친척들이 모여 총 24봉 정도를 벌초한다. 올해는 추석이 빨라진 탓에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5명·4명씩 2팀으로 나눠 벌초를 했다. 이 씨네 팀은 4명으로 해남 북일면 선산의 8봉을 맡았고, 오전 8시에 시작한 벌초는 오후가 5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묘들이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탓에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린 것.
더욱이 묘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 난 잡초와 풀들을 정리하며 산비탈을 타야하기 때문에 산행 아닌 산행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벌초를 시작하기 전에 힘이 다 빠져버린단다. 여기에 막내라는 이유로 온갖 짐과 자질구레한 심부름은 모두 이 씨의 몫이였단다. “예년 같으면 풀들이 예초기에 걸려 그걸 빼내느라 고생을 했는데 올해는 비가 적게 내려서인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지 않아 다행이 작업이 수월했다”며 “빨리 갈퀴질과 잡일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처럼 고된 작업에도 이 씨는 벌초 때면 사촌지간을 만날 수 있어 좋단다. “부모형제 아니고서는 광주에 살아도 사촌들 볼 일이 별로 없다”며 “그나마 벌초가 있기 때문에 설, 추석, 시제, 벌초 4번은 만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벌초가 문중행사이기 때문에 비용걱정 없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재미도 빠트릴 수 없단다.
조상 묘 어딘지도 헷갈려
다음 주말에 벌초 일정이 잡힌 강병구(53·용봉동) 씨. 벌초 일정과 당직이 겹치는 바람에 당직을 바꾸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벌초철인지라 회사에서도 대신 당직서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각 집에서 한 명씩 참석하는 문중행사에 안 갈 수도 없고 답답하다”며 “특히, 예초기를 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내가 빠지면 안 될 상황이다”고 말했다.
8대 장손인 강 씨네의 벌초행사는 시제 못지않게 크게 치러진다. 벌초를 해야 할 봉분도 많은데다 친척들이 객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벌초 때가 되면 20여 명이 넘는 친척들이 한꺼번에 모인다. 때문에 음식 장만을 비롯해 벌초 준비도 대규모로 이뤄진다. 이맘때가 되면 강 씨네 순천 인근 선산에는 벌초 행렬이 이어져 어느집이 벌초를 하는 지 동네가 다 알 정도다. 이렇게 크게 진행되는 벌초지만 최근 집안 어른들은 고민이 크다. 벌초를 이어가야 할 젊은이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 묘가 어디 있는지도 헷갈려 한다”며 “예초기 작업은 위험한데다가 봉분의 모양을 살려줘야 하기 때문에 여러 번 해봐야 하는데 벌초에 참석 자체를 하지 않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강 씨는 “벌초를 할 때는 봉분의 모양(라인)을 살려줘야 하는데 잘못하다보면 봉분에 ‘땜방’이 생기는 수가 있기 때문에 정성들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가 다가오면 낫을 갈아 조상의 묘를 찾아 여름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주며 자손의 효를 다하고 이를 도리로 여겨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벌초가 바쁜 삶 속에서 귀찮고 힘든 일 정도로 취급되며 한가위에 앞서 벌초 하는 관습이 수고로움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강 씨는 “온 식구들이 한데 모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며 “산을 오르는 동안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한 이야기나 옛동네 이야기 등 추억을 곱씹기 마련인데 이것이 벌초라는 힘든 일 안에 담긴 진정한 즐거움 아니겠냐”고 말했다.
광주드림 2008.08.26 06:00
http://gjdream.com/v2/week/view.html?news_type=405&mode=view&uid=389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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