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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기타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 당선작 - 감사할게 많은 인생, 기쁘고 떳떳하게...

장려상 - 김도윤

감사할게 많은 인생, 기쁘고 떳떳하게...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들이 있습니다. 월급을 많이 받고, 권위 있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보잘것없이 초라한 직업을 가진 이들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누군가를 보살피고 돌보는 직업은 하늘이 내린 배필 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고, 내가 아니면 불안해하고 심신이 평안 하지 못한 어르신들을 돌보는,나는 요양보호사입니다.
어떨 때는 가사도우미처럼 인식되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아파도 했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수족이 되어 그 분들을 부모처럼 보살펴 드린 지도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가면서, 처음 입사 때를 돌이켜 보자니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집니다.

2007년 가을, 노인 돌보미 대상 어르신 댁으로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의 가슴을 끌어안고, 첫 발을 옮겨 놓았습니다.소백산 아래 첫 동네 골짜기에 사시는 아흔 살 가까이 되신 할머니를 처음 뵙던 날, 나는 처음으로 초라한 노인을 보고 눈물을 흘려 봤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다리와 허리 관절이 굳어 버려서 전혀 걷지 못하시고, 엉덩이로 밀고 다니시면서 화장실도 가시고, 때론 엉금엉금 기어서 마당에 나가 햇볕을 쬐는 것이 정말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의 환경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2008년 노인 장기 요양 등급제를 실시하던 해 12월, 요양등급 3급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누구나 첫 정이 오랜 기억으로 남겠지만 내게 할머니는 조금 특별하신 분이십니다.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시면서, 또 어떨 땐 할머니 자신이 개그우먼이 되셨다가, 또 어떨 때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시는 분이시지요.
할머니의 첫인상은 작은 몸집에 두려움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계셨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고집스러워 보였습니다.
나는 할머니께 내 딴에는 최대한 다정스럽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집스런 할머니는 인사를 받기는커녕 귀찮다는 듯 신경질을 내셨고, 어린 아이처럼 겁에 질린 눈빛으로 나와 복지사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보시면서

 “뭐하는 사람들인데...어디서 왔니껴?”하시며 쪼그리고 앉아 계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머니를 도우러 온 사람이며, 뭐든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말씀하시라고 일러 드렸지만 인지기능이 약하신 어르신께서는 선뜻 알아듣지 못하신 듯, 여전히 경계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날 동안 나는 갈 때 마다 할머니께 최소한의 필요한 가사지원 서비스만 해 드리고, 우선은 어르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또 내가 당신편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자 많은 대화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그저 마음 한가득 어르신께 최선을 다했다면 굳이 애써 설명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싶습니다.
할머니는 오래전 이미 다리 관절이 굳어 버려서 전혀 일어서지를 못하십니다. 높은 싱크대에 어린 아이처럼 매달려서 가스 불을 켜시고, 설거지를 하시는 등 모든 것을 그렇게 매달려서 생활 하십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자주 쓰는 모든 주방 집기류를 앉은뱅이 식탁위로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저통, 그릇, 화장지, 약통 등 거의 모든 것을 씽크대 밑으로 내려서 진열하였습니다.
마침 식당용 식탁이라서 한쪽으로 정리해 놓고도 충분히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할머니 댁에 매일 방문하면서 그렇게 차츰차츰 우리는 정을 쌓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를 돌봐 드리는 데 있어서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1년이 넘도록 올 4월까지 13개월 동안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서 방문하자마자 이웃집에 가서 쓸 만큼의 물부터 길러다 놔야만 했습니다. 간혹 한 두 시간씩 가는 물줄기라도 보이면 온갖 통을 다 동원해서 며칠 쓸 물을 받아 놓았습니다.
또한, 어르신께 마땅히 해 드릴 반찬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식거리가 없어서 늘 텃밭의 나물만 뜯어서 삶아서 무치고, 부침개도 굽고, 국도 끓이는 등 그렇게 반찬을 해 드렸습니다.

어르신은 이가 하나도 없으십니다. 틀니조차도 하지 못하셔서 잇몸으로 음식을 우물우물 하시다가 그냥 넘겨 버리십니다. 모든 음식은 잘게 다져서 조리를 해야만 했으니, 당연히 시간도 배로 걸리고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보일러 기름이 없어서 냉방에 옥 매트 하나만 깔고 누워계시는 것이었습니다.

한겨울에 할머니와 대화를 할 때면 서로의 입에서 뽀얀 입김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뿜어져 나옵니다. 할머니는 겨울 내내 감기에 걸려서 콧물에 기침을 하시고, 나는 보건진료소에 가서 소장님을 모셔오고 약을 타서 나르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댁을 방문한지 여러 달이 지나면서  몹시 추운 겨울날 드디어, 여러 곳에 흩어져서 사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문제점을 심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이가 없으신 노인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어찌 나물만 먹고 살수가 있겠는가? 또 겨울 내내 전기매트 속에서 코가 빨개 가지고, 입김을 불면서 감기를 달고 사는데, 그렇다고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하나, 물은 잘 나오지도 않고, 빨래는 늘 사무실에 싸 가지고 가서 해야만 했고, 한번이라도 와 보시고 할머니의 어려운 환경을 눈으로 직접 보고 가시라고 당부 아닌 당부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할머니의 집에는 보일러가 돌아갔고, 한 달에 한번 정도 따님들이 돌아가면서 할머니를 찾아 오셔서, 다진 고기며, 밑반찬거리, 국거리 등을 냉장고에 가득히 채워 놓고들 갑니다. 물론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이루 말 할 것 없이 좋아지셨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나에게 당신의 모든 마음을 맡기신 듯 주말을 지내고 오면 새벽부터 마루에 나와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마 전 막내 따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린애와 노인들은 거두기 나름인 것 같아요. 정말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정말 어르신을 내 엄마처럼 성심성의껏 보살펴 드렸습니다.

처음에 흔히들 말하는 노인 냄새 역겨운 방안을 들어 설 때면 사실은 구역질도 났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차츰 할머니 냄새에 동화되어 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은 가족들이 자주 할머니를 찾아뵙고, 그 분들이 자신의 엄마에게 최선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겠습니까?

 매일 햇볕 내리 쬐는 마루에 걸터앉아서 시간 개념도 없이 해만 뜨면 나를 기다리시는 할머니를 보노라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내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집니다.

“에고에고~우리 할머니! 예쁜 얼굴 새까맣게 다 타네." 내가 할머니 댁에 방문할 때 쓰는 출근 멘트입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타도 괜찮지. 우리 아줌마만 와 주면 되지.”하시면서 그 앙상한 엉덩이를 밀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십니다.

할머니 당신은 밥해주고, 빨래 해 주는 아줌마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외로운 당신에게 찾아와 주는 반가운 제비를 기다리듯이 나를 반기십니다.

얼마 전에는 손 ․ 발톱을 깎아 드렸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마운데 줄 건 아무것도 없고, 내 나중에 엿장수 오면 못 쓰는 냄비 주워 모아서 엿 한 가닥 사 줄 터이니, 쪼매이만 기다리시게”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배꼽을 잡았습니다.

또 가사서비스를 해 드리고 돌아 올 때가 되면 늘, 방안의 파리를 모두 잡아 드리고 옵니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놈들을 다 잡으면 안 되지. 한두 놈은 남겨 둬야 새끼를 치지. 그래야 내가 심심하지를 않지.”하시면서 농담 아닌 진담을 하십니다. 그럴 때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사람이 얼마나 그리우면 파리와 고양이가 지나가는 것에도 반가운 마음을 표현 하실까.’

우리 할머니는 가끔 할머니만의 코미디를 하십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리고 돌아옵니다.
언젠가 장기 요양 등급을 받아서 내가 매일 온다는 것을 느끼시고는

 “내가 늘그막에 뭔 복이 많아서 이런 새댁이가 매일 날 보러 와서, 거둬주고 가는지 모르겠네. 지금은 아무것도 해 줄게 없지만 내 죽으면 하늘에 가서 꼭 우리 아줌마를 돈 많이 벌고, 복 많이 받게 해 줌세.”하시면서 목 메인 소리를 하셨습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부르는 호칭을 매일 잊어버리십니다. 가르쳐 드려도 외우지 못하십니다. 요즘은 인지 기능이 워낙 많이 떨어지셔서 어떨 땐‘아줌마’어떨 땐‘새댁이’또 드물게는 나를 보고‘할매’라고도 부르십니다. 서른아홉 살에 할매! 우습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또 한바탕 할머니의 개그에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예전부터 말똥만 굴러가도 잘 웃던 나는 할머니 때문에 웃을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요즘은 돈 주고도 웃는다는데, 너무도 감사할 일이지요.

나는 1년 전부터 미용기술을 배웠습니다.
사실은 방안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시는 할머니를 위하여 미용 기계를 사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내가 돌보던 많은 어르신들의 머리 미용을 도와 드립니다. 원래 눈썰미가 조금 있는 편이라서 잘 아는 미용실에 가서 사정 얘기를 했더니 틈틈이 미용 기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좋아들 하시지만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어르신들이라 공짜로 머리 손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더욱더 좋아 하시고 고마워하십니다. 또 무엇보다도 지저분하고 꾀죄죄한 모습이 아닌 깔끔한 어르신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 역시 흐뭇합니다. 오늘도 시원스럽게 머리손질을 해 드리고 나니, 할머니께서는

“ 아이고~ 좋다. 머리가 한 근은 없어 진 것 같네. 가뿐한 게 날아갈 것 같다. 참 고맙니데이~ 복 많이 받으소.”
하시면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십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내 미용기술이 날로 늘어나는 것에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좋은 일 하는데 복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기보다 그분들이 있어 내 마음을 아름답게 갈고 닦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싶습니다. 내가 그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가는 것이라기보다 한평생을 살아온 그분들에게 나의 미완성 된 인격이 도움을 받아 성숙하고 좀 더 나아 질수 있는 시간들을 허락해 주신데 오히려 감사 할 따름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늘 받는 것에 길들여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어르신들의 변을 치우고,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도 내 마음은 행복으로 충만합니다. 간혹 몇몇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뭐 할게 없어서 노인네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사느냐고 하지만 나는 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기다리시는 저 할머니들이 매우 사랑스럽습니다.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서러울 때도 많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로 기쁘고 떳떳하게 소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겁 많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그분들의 순수한 마음 하나하나에 감동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살아가면서 인생의 초점을 내 자신이 아니라 내 자식에게 맞추고 살아갑니다.

최고인 아이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공부 잘 하는 아이 보다는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똑똑한 아이보다는 착하고 곧은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엄마 마음은 어느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육은 말로 하지 않습니다.
어르신을 공경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심신이 건강하고 착하게 커가는 우리 아들에게 아름다운 엄마, 떳떳한 엄마로 살아 갈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내 부모, 이웃을 공경하고 힘없는 노인들을 보살펴 드린다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층 더 아름답고 행복해 질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요양보호사님들을 가슴 깊이 응원합니다.

자료출처 : http://cafe362.daum.net/_c21_/bbs_list?grpid=1DsO9&fldid=Fc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