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것은 아버지의 환한 웃음 속에 ....
작년 9월 추석명절을 천안의 어느 대학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오른쪽 편마비로 15년을 방안에서만 살아오시며 아프다고 말씀 한번 안하셨던 아버지께서 아프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붉게 부어오르면서 시작한 상처는 약국의 약으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통증 때문에 부랴부랴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이틀간의 초조 했던 검사결과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동맥폐쇄 증. 복부아래 부분에서 오른쪽 다리로 진행하는 동맥이 막혀 오른쪽 다리로 피가 갈 길이 없단다. 한 번의 혈전을 흡입하는 수술로도, 또 한 번의 혈관을 잇는 수술로도 아버지의 상세는 낫기는 커녕 고통은 더욱 극심해져만 갔다.
여름의 끝자락이 병실에 매달려 있었고, 두려움과 갈등으로 가족 간의 긴급회의는 답을 찾지 못 한 채 보름이 지날 무렵 병실 이웃 분들의 말씀을 통해 들은 서울OO병원 이란 곳을 진단서와
소견서를 들고 찾아갔다. 당장 모시고 오라며 병실을 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던 유모 과장님.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고통 앞에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던 아들은 아버지의 생명을 맡아 주시겠다던 분을 만나 기뻤고 감사했다. 다음날 바로 서울로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가면서 누나와 여동생과 주위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잔소리를 감당해야 했지만 서울OO병원에 아버지를 부탁했다. 한 번의 수술이 더 있었고, 아버지의 아픈 밤은 다리를 절단해야 끝낼 수 있다는 사실 만을 남겨두고 그렇게 가을이 밤낮을 안 가리고 붉어져 가고 있었다.
"아빠 ! 선생님이 이제 다리만 절단하면 된데! 아빠 걷지 못하셨으니깐 괜찮아! 다리 없는 게 무슨 흉이야? 걱정 하지 마 아빠!! 아들 믿지? 여기서 기다릴게!".
태연한척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아버지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을 드렸지만 큰 수술을 하러 들어가는 아버지의 두려움과 처절함을 어떻게 말로 다 감당하랴. 더디게 보다, 더 더디게 이동하는 지구를 딛고 섰던 수술실 앞. 그래도 끝 은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봤다. 아니 한쪽 다리 쪽 이 꺼져있는 이불을 봤다.
수술을 견디어 주실 수 있을까 에 대해 선생님과 몇 번의 상담이 있었지만 그렇게 아버지는 결국 견디어 주셨다. 이불이 꺼져 있는 것 을 아직 모르시는 채로.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아버지'
중환자실에서의 제한된 면회 때 "아빠 !! 나 보여?" 진통제와 고통의 깊은 덤불속에서 혼미하신 아버지를 재촉 했지만 한번 눈을 꿈 뻑 하시고는 이내 잠에 드셨던 아버지 ......
'가족' 그 사랑의 아주 밑바닥 까지를 다 뒤집어 드러내 보여 줘야지만 이후의 삶을 허락해 주는 것인가?
아주 느릿하게 한 방울 한 방울 링거액이 떨어지는 만큼씩, 딱 그만큼씩 아버지는 회복하셨고, 다리를 잃으신 속상함도 딱 그만큼씩 덜어내셨다. 의사선생님이며 간호부의 그 지극한 손길들은 부끄러운 아들에게 아버지께 어떻게 대해야 했었는지를 알게 해 주셨는데, 그 공부는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병원에서 아버지는 혈관이 다 숨어버린 팔뚝에 매일 어렵게 주사를 맞으시며 미래를 준비 하셨고, 아들은 노인 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요양원에서 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요 양 원 어느 세상의 아들딸들이 이 단어에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식사, 배변 의 기본적인 행위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모님의 일과를 앞두고 고통의 쓴 밤을 새우지 않은 자식이 있을까? 하지만 현실은 둘만의 삶이 가능하지 못한 게 사실 아닌가! 그렇게 결심을 하는 동안 최근에 지어진 시설이 좋은 요양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병실 이웃분들께 아버지를 부탁하며 요양보호사 학원에 다니던 중 전라도 광주의 광주보훈요양원에 마침 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전화를 했다. 혹시나 아버지께서 입소하실 자리가 없을까 불안 해 하면서 절차를 밟았고 그런 모든 과정을 전화로만 할 수밖에 없었던 아들을 광주보훈요양원의 친절한 목소리는 그렇게 준비를 해 주셨다.
"아빠! 이제 아빠 요양원에 가야돼! 아빠랑 나랑 살면 나 출근하면 아빠 어떻게 혼자 있어?, 왜 무서워? 뻔 하지 뭐 노인네!,걱정 마! 나 학원 다니 는 거 요양원에서 일 하려 구 다니 는겨!, 난 거기서 일 하구 아빠는 거기서 살구, 그럼 같이 사는 거랑 똑같어, 어때! 괜찮은 생각이지? "
요양원에 가야하는 사실에 대해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대충 이해하시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셨지만 아들보다 백배 천배는 더 서글펐던 아버지의 가을. 그렇게 정원의 감나무가 붉게 경건한 믿음을 드러내던 날 감사했던 이웃 분들의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퇴원을 했다.
고향에 많은 단어들을 두고 가야 했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전라도 광주를 찾아왔다. 따뜻했던 목소리의 광주보훈요양원을 만났고, 아버지의 일과를 감당해주실 광주보훈요양원을 만났다.
아버지께서는 낯선 잠자리를 받아 들이셔야만 했고, 아들은 이사를 했고, 이력서를 준비했다.
눈이 왔다. 아주 펑펑 왔다.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방안에서 혼자 눈을 보셨던 15년을 끝내셨고, 한쪽의 다리를 잃으신 것만큼 소중한 이웃 분들과의 삶을 얻으셨으며. 아들은 사정하여 지난2월 요양원에 입소하신 모든 어르신의 보호자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 땅을 일구어 가시며 또한 이 땅을 일구어 가야할 2세들을 키우고 계신 요양보호사 여사님들과 일하게 됐고, 그런 훌륭한 분들께 아버지의 일과를 부탁하고 있다. 그래서 아들은 안심한다.
거리마다 봄이 걸리고 길바닥엔 봄비가 온다. 창문으로 그림 같은 계절만을 혼자 구경하셨을 아버지께선 이제 여러 이웃과 밖에 나가서 계절을 몸으로 만나실 수 있게 되니, 누나와 여동생도 친정을 근심하며 항상 노심초사 하였지만 이제는 온 가족이 평안해 졌다. 아버지와 아들의 새로운 삶의 설계를 가능하도록 요람이 되어준 광주보훈요양원에 무한의 은혜를 입고 있다.
아버지를 뵈러 갈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항상 기다리시며, 간식으로 나온 음료수를 아들에게 권하신다. 못난 아들을 왜 그토록 반겨주실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정말 그 끝이 없으니 그 크신 은혜를 갚을 길도 없는 것 이 분명하다. 요양보호사님들의 마치 봄날 흰 나비 같은 사뿐사뿐한 손길에 아버지께서는 하루가 다르게 마음과 몸이 아주 좋아지셨고, 그런 모습을 뵐 때마다 그동안 방안에서 혼자 지내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면서 15년 전 아버지께 사회와 이웃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
그것을 드려야 했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의 궁극은 못난 아들의 눈물. 그것 뿐.
이제 입소하신지 6개월이 되어가고, 아들은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게 된 것이 4개월이 되어가는 오늘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버지와 아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한 가정이 온전하게 가족안의 문제와 갈등을 해소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노인 장기요양보험' 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그동안 아들만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평가하고 우리가족만의 문제일 뿐이라고 비관하였던 시간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이웃 모두의 문제였음을 체험하고 있다. 더욱 많은 안타까운 생계를 겪고 있는 분들께도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이곳 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세상천지 어느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어느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비교하거나 가늠할 수 있겠는가, 모두 아버지와 같을 테고 모두 못난 아들과 같을 것이라 여긴다. 노인 장기요양보험에 의지하는 아들은 사치스런 부끄러움을 느끼기 이전에 아버지께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빠 나 내일 월급타~!"
"잉? 올마?"(벌써부터 신이 나신고 목소리가 커지신다)
"내 돈 인디 아빠가 왜 신경 쓴댜?"
"치...... " (멋적게 웃으신다)
"...... 흐흐 올마?"(그래도 끝내 궁금해 하신다)
"○○만원"
"오이구~!흐흐흐"(가가멜이 스머프를 보는 분명 그런 웃음이다.)
아들 월급의 용도 등을 궁리하고 계실 저녁, 아버지께서 잃어버리셨던 그 시간동안의 인플레이션에게도 아들은 너무 감사한다.
6월 10일 오늘. 네 번째 월급을 받았다. 아버지께 대단한 아들인, 아들은 행복이란 것 이 어디에 숨겨져 있었는지 서른여덟의 나이를 먹고 나서야 알 것 같다.
잘 산다는 것, 행복한 것, 즐거운 것 그런 것들은 아버지의 환한 웃음 안에 다 들어 있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행복한 것 맞지요? 요양원 앞산의 빼곡한 푸름처럼 말입니다'
자료출처 : http://cafe362.daum.net/_c21_/bbs_list?grpid=1DsO9&fldid=Fc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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