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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기타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 당선작 - 하기 쉬운 말 & 하기 힘든 말

모범상 - 김명기

하기 쉬운 말 & 하기 힘든 말


아파트 앞 동의 불빛이 하나 둘 꺼져가는 시간  하루의 마감을 짓는 일기를 쓰며 나도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2008년 2월 12일

 지난 1월 13일 새벽 아버지 소변줄에서 피가 계속 나서 근처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평소 40분 정도 거리를 17분 만에 주파하여 응급실에 도착 후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검사 결과 ‘패혈성쇼크’라는 진단이 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쇼크라고....바로 응급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검사 도중 직장암도 발견이 되었다. 암은 우선 뒤로 미루더라도 문제는 쇼크에 의해 혈압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갑자기 심정지가 올 수 있는 상황이니 가족 모두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기적적으로 혈압이 돌아와 일반 중환자실로 다시 응급 병동으로 다시 일반 병동으로 내려왔다.
이제 암 치료를 위해 준비 중 집안 어르신들이 수술을 만류 하셨다.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투병한지 8년... 수술 한다고 완치 되는 보장도 없다고....
 삼형제가 모여 의논 한 결과 나와 막내는 수술 찬성, 둘째는 반대였다.
나는 그냥 밀어 붙이기로 하고 수술을 위해 준비 하던 중 수술 전날 주치의의 수술 설명 듣는 자리에서 수술을 취소하고 말았다. 몸 상태가 안 좋아 수술실에서 못 나오실 수도 있다고 했다.

 또 같은 병동에서 수술 후 사지 멀쩡한 환자들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식 된 도리 다하자고 아버지께 너무 큰 고통을 드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 결정 후 주치의 선생님이 항암치료도 포기 한다고 하시면 남은 생이 보통 3~4개월 이고 길어야 6개월이란 말을 들었다.

 다음주가 설이다.
내년 설도 아버지와 같이 맞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밤이다.

위의 일기와 같은 일이 있었기에 작년 이맘때쯤 새로 시행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나의 많은 관심이 집중 되었다.
나 역시 아버지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방문간호의 내용을 보고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 방문 간호만을 신청하였다. 방문 요양은 보호자인 내가 항상 옆에서 간호를 하기에 또한 아버지 본인께서 다른 사람 손을 타시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 하시기에 였다.
하지만 얼마 후 요양기관인 YWCA의 권유로 나중에 맘에 안 들면 취소하기로 하고 방문 요양도 신청을 했다.

 헌데 이 작은 결정이 나의 일상에 큰 변화를 주리라곤 그땐 생각하지 못했다.
10살 딸아이를 혼자 키우며 9년째 중풍으로 또 치매 암등으로 투병 중이신 아버지를 간호하는 나에게 정말이지 너무나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우선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요양보호사님의 음식 솜씨이다.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던 남자이다 보니 살림을 함에 있어 어딘지 모를 빈구석이 많게 느껴졌다.
특히 병석에 누워 하루 종일 생활 하시는 아버지는 당연히 입맛이 없으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나름대로 음식을 해서 드려도 항상 뭔가가 부족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1년 가까이 와주시고 계신 요양보호사님은 30년 주부 9단의 살림노하우가 담긴 반찬들을 거의 매일 만들어 주고 계신다. 또 가끔 댁에서 만드신 음식들을 싸가지고 오셔서 먹으라고 슬며시 냉장고에 넣고 가신다.
아버지 역시 금방 한 음식이어서 인지 잘 드시고 우리 공주님도 학교 안가는 날은 요양보호사님과 같이 음식을 만들며 즐거워 한다.

 나는 습관처럼 아버지께 드시고 싶은 음식을 여쭈어 본다. 대답은 언제나 ‘없다‘는 대답임을 알면서도
그러던 어느 날 요양보호사님이 여쭈어 본 질문에 홍시가 드시고 싶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날 이후로 냉장고에 홍시가 떨어지지 않게 항상 준비를 한다.

 다음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부분이다.
나의 아버지는 30여년간 경찰관으로 근무 하시다 정년 퇴직 하셔서 누구보다 건강하셨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2급 장애를 받으셨고 지금은 여러 가지 병증으로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시고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시지만...

 작년 1월 병원에서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사람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혈변으로 항상 귀저귀를 차고 계시고 소변은 전립선에 이상으로 배에 소변줄을 꽂고 계신다. 그래서 화장실은 가시면 위험하다고 항상 말씀드리지만 치매 때문에  본인의지로 화장실을 가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다 배에 소변줄이 빠져서 급하게 병원 응급실로 간 적도 몇 번 있고 치매가 심해 지셔서 변을 만지거나 여기저기 칠해 놓으시기 때문에 그 전에는 잠시라도 옆을 비우면 침대에 손을 묶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항상 ‘살인범도 이렇게는 안한다’ 며 크게 역정을 내시곤 했다.
하지만 방문요양을 받으면서부터 침대에 묶지 않아도 돼서 정말 감사하다.
아버지가 싫다고 해도 침대에 묶는 심정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이 힘들 정도다.

 요양보호사님이 오시면 언제나 큰소리로 밤새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 주신다.
지난달 갑자기 열이 심해지셔서 병원에 5일이나 입원하셨던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듣고 오신 사돈어른은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셨다. 하지만 지금 오시는 요양보호사님이 문병을 오셨을 때는 누군지 알아 보셨다. 가끔 멀리 사는 며느리나, 손주들은 기억 못하셔도 요양보호사님의 얼굴은 항상 알아 보신다. 아마 가족 같은 느낌이실까?

다음으로는 나의 삶에 조금의 여유를 찾은 점이다.
장기요양보험의 도입 취지는 환자들은 물론 그 보호자들에게 편의를 제공 한다는 의도도 있다고 들었다.
제도를 이용하기 전 나는 24시간 언제나 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마트라도 잠깐 나가려면 맘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묶어 놓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 개인 생활은 생각도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3시간 요양보호사님이 오셔서 장보기를 부탁 드리거나 아님 내가 볼일을 보러나가면 침대에 아버지를 묶지 않아도 되서 너무 감사한다.

 병원에서 얘기한 6개월을 훨씬 넘긴 지금 나는 매일매일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버지를 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큰소리도 치고, 때로는 가슴속 깊은 곳에 호소도 해 보고, 눈물도 흘려 봤다.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환자로 봐야 하는데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많은 병들이 있지만 이 치매라는 병은 정말이지 최악인거 같다.
많은 소중한 기억, 추억, 가족들 심지어는 나 자신도 지우개 되는 나쁜 병.

 몇일 전 뉴스에 80대 할아버지가 치매로 간병하던 70대 할머니를 살해 하고 같이 자살을 기도 했다는 소식을 봤다.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막 첫돌을 맞는 시행초기라 문제점도 지적되고 말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확실히 나에게는 도움이 된다. 처음 신청 할 때만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서비스를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게 사실이다.
여타 다른 이용자분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런 마음은 환자를 모시고 있거나 있으셨던 분들은 공감하시리라 생각한다.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 이지만 일선에서 활동하시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담당자 분들과 많은 요양보호사님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얼마 전 딸아이가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더군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사랑한다고 답했습니다.

 그 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머리가 크고 난 후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안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방에 가서 주무시는 얼굴을 들여다 보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냥 아무말도 못하고 씩~ 웃으며 나왔네요.

 그 날 샤워 시켜드리다가 아버지 등에 썼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정말 하기 쉬운 말이지만 정말 하기 힘든 말이기도 하네요.
아직도 말 못했는데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일기 때신 이 글로 마감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자료출처 : http://cafe362.daum.net/_c21_/bbs_list?grpid=1DsO9&fldid=Fc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