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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나이들고 싶습니까


노인(老人)은 사전적 의미로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뜻하나 때로는 지혜를 가진 어르신을 호칭하기도 한다. ‘노인을 공경하자’는 말은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아온 분들의 삶을 배우자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따라서 존경할 만한 노인을 다수 모시고 사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 셈이다.

그러나 노인이 노인답게 늙어가는 것, 즉 참노인이 되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푸념이 늘고 고집스러워진다. 젊은 사람이 양보하고 도와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가족에 대해서도 간섭하고 잔소리하게 된다. 게다가 몸냄새 입냄새까지 더해지는 육체적 노화에 다다르면 심신 모든 면에서 타인으로부터 눈총받는 외로운 존재가 되기 쉽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노인이 될 수 있을까. 최근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1972년에 발표한 ‘계로록(戒老錄)’을 보면 귀가 번쩍 뜨일 것이다. 원제가 ‘늙음을 경계하는 기록’인 이 책은 고독감과 자괴감에 빠져들지 않고도 타인과의 어우러짐 속에서 멋진 노년을 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이러한 자세는 어렸을 때는 유아의 상징이고, 나이 들어서는 노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돈이나 물건, 시중에 이르기까지 노인들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이런 심리 상태가 모든 면에서 매우 심해지면, 그것은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로 보아도 좋다.”

“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이다. 노인은 언뜻 보기에 누구나 쉽게 단념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어른다움’이란 대국적 견지에서 스스로는 뒷전으로 물러서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며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른다움’의 미학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누구든지 한 번은 젊고 누구든지 한 번은 늙는다. 이만큼 공평한 흐름을 시기하는 것은 탐욕이다.”

“높은 지위나 훈장을 탐낸다든지, 특수한 명예를 지닌 단체의 회원이나 임원이 되길 원한다든지, 비석·동상 등을 세워주길 바라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이러한 욕심이 생기면 늙고 있다는 증거로 자각하고 경계해야 한다.”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늙음을 자각할 것.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는지 어떤지를 판별하는 데는 이 방법뿐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동정심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나는 정말로 싫었다. 노후에 받아야 하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대우이다.”

저자는 이어 만년에 필요한 마음 가짐을 ‘허용·납득·단념·회귀’ 등 네 가지로 정리했다.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선과 악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허용이며, 내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을 정성을 다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납득이다.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은 어떠한 인간의 생애에도 있으며, 그때 집착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날 수 있다면 오히려 여유 있고 온화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념이다. 그리고 회귀란 사후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무(無)라도 좋으나 돌아갈 곳을 생각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조정진기자의 冊갈피]

세계일보  2009.10.30 16:37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91030002955&subctg1=&subctg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