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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뒤늦게 배운 요리, 맛있게 변한 노년


'싱글 실버' 100만 시대 <中>
요리 등 취미 활동 통해 세상과 관계맺기 꾸준히

한 해운항공회사에서 이사로 일하는 이춘식(65)씨. 싱글 실버(독거노인)로 노년을 '우아하게' 살기 위한 실전 생존전략의 표본과 같은 인물이다.

"나이 많다고 자존심만 내세우면 안 되죠. 업무의 노하우나 인맥 소개 등 내가 가진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쓸모 있게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50대 중반에 아내와 사별해 홀로 된 뒤 방황하다 환갑을 넘겨 회사 세 곳에 취업하면서 '홀로 서기'에 성공하기까지 그는 웬만한 청년 취업 지망생 못지 않게 땀을 쏟았다.

그는 원래 중견 무역회사 간부로 일하다가 직접 기계 부품 수입업체를 경영한 '사장님' 출신이었다. 외환위기로 회사를 접은 데 이어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1999년 세상을 떴고, 그후 재기하는 데는 무려 5년의 세월이 걸렸다.

환갑이 넘어 처음 얻은 직장은 61세 때인 지난 2004년 연봉 1600만원의 경리직이었다. 이 자리를 위해 그는 각 회사에 100장이 넘는 이력서를 돌렸다. 또 실버취업박람회장도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학원을 다니며 회계 2급 자격증도 땄다. 그러다 노동부 고용 정보시스템을 통해 한 IT 업체 경리로 취직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엔 경력을 살려 다른 수입업체로 옮겨 월급 200만원을 받을 수 있었고, 작년 10월 지금의 회사로 스카우트됐다.

▲ 60세 이상 남성들의 요리 교실‘골드 쿡’에 참석한 이들이 음식을 준비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일 국제로터리 3750지구 총재, 박재갑 서울의대 교수, 김계영 동서병원 원장,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앞으로 싱글 실버가 될 것에 대비해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이씨는 "노인이라고 단순하고 수동적인 일밖에 못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과의 관계맺기(네트워킹)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일자리는 후배가 소개했지요. 전 후배나 젊은 친구들도 자주 만나요."

황혼 이혼이 늘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싱글 실버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재력이 없더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으면서 어울려 사는 것이 싱글 실버들의 생존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악진흥회 회장을 지낸 김규문(67)씨의 경우 '요리'로 주변과의 네트워킹에 성공했다. 지난 24일 저녁, 이화여대 생활과학대학 5층 실습실에서는 김씨와 13명의 다른 남성 노인들이 음식을 만드느라 한창이었다. 만 60세 이상 남성을 위한 요리 교실 '골드 쿡'은 서울의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소장과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김화영 교수가 올해 처음 시범 운영한 프로그램이다.

올 봄 상처(喪妻)한 김씨는 "내가 직접 요리한 음식 맛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박상철 소장은 "노인 급식소를 찾는 노인 중에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밥 할 줄 몰라서 온 사람도 있다"며 "우아한 싱글 실버로 살려면 요리 실력은 필수"라고 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석한 남성들은 평생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소금과 설탕은커녕 주방 세제와 식용유도 제대로 구분을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이들이 이젠 "요리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돈이 없어도 주변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바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전국 60여개 시니어클럽과 전국에 200개가 넘는 노인복지관에 그런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클럽은 노인들의 소규모 공동 창업을 돕는 것이 주 임무다. 노인복지관은 교육·취미·여가·건강·사회 봉사 분야에서 지역별로 80가지 이상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장애 청소년들에게 수영을 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김옥기(여·72)씨는 "지난 6년간 시니어클럽에 참가하다가 현재의 프로그램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연구원 책임연구원 권진희 박사는 "사회에서 노인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싱글 실버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궁극적으로 노인을 보살피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8.07.30 22:0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30/20080730016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