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현대판 고려장


고려시대에나 있었을법한 고려장(高麗葬)이 판치고 있다. 존엄사, 치매 노인 유기 또는 감금, 비정규직 근로자의 해고 등을 두고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하는 분위기다. 고려장은 고구려 때 늙고 병든 사람을 구덩이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기를 기다려 장사 지냈던 풍습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28일 한 TV 프로그램을 보고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머리와 가슴까지 먹먹해졌다. 아들에 의해 닭장의 닭처럼 3년째 철망 속에 갇힌 채 연명하고 있는 노인을 보면서 ‘천륜지정(天倫之情)’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해 졌다. 한 시골마을, 자물쇠로 채워진 철망 문 속에서 칠순 노인이 3년째 아들이 넣어주는 물과 하루 한 봉지의 건빵 만으로 연명하는 충격적인 모습. 멀찌감치 보이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3년이란 세월을 보낸 할아버지는 검게 그을려 있었고, 두꺼운 옷으로 인해 한여름 폭염을 견디기에 무척 힘들어 했다.

물론 전깃불도 없어 밤이면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런 짓을 한 아들`며느리가 사는 집은 바로 앞.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에게서 치매를 앓으면서 마을의 물건을 훔치는 등 볼썽사나운 행동을 해 병원에 입원도 시켜봤지만 돈이 감당 안 돼 최후 방법으로 그렇게 했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카메라 앞에서 되레 큰 소리를 쳤다. ‘인륜’을 저버리고도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태도였다.

결국 SOS팀이 아들을 설득해서 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하고 거처를 마련해 줘 안정을 되찾아 갈 즈음에 아들이 찾아와 아버지에게 밥을 한 술 한 술 떠 드리면서 속죄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현재의 세태를 너무나 여실히 보여준 것이란 점에서 며칠이 지나도 맘이 짠할 뿐이다.

젊어서는 자식들을 위해 고생고생해서 사람 되도록 만드느라 없는 살림에 등골 빠져 가며 교육과 결혼을 시켜 놓으니 늙어 병들었다고 부모를 집에서 내쫓고 짐승이나 살만한 철창우리에 가둬놓는다는 것은 아무리 해도 용서를 받지 못할 일이다.

이 같은 ‘현대판 고려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초 방송에서도 아들에 의해 모텔 방에 버려진 채 영양실조에 걸려 죽음을 앞둔 어느 할머니가 방송되면서 치매에 걸린 부모들을 요양원 등 시설에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이처럼 자식으로부터 버림당한 부모들도 잠시 제정신이 들 때면 자식들을 원망하기는 커녕 “잘 살았으면, 그래서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부모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하해(河海)와 같은데 자식은 그 반, 아니 그 반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판 고려장’을 보면서 일할 직장을 가졌다는 것과 혼자서 운동하고 밥을 드시는 부모님을 둔 것만으로 행복하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때 너무나 큰 삶이며, 존재였고 힘이었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 없듯 늙고 병이 들면 혼자의 힘으로 버텨내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노인에게 작은 관심과 보살핌이 큰 힘이 되는 이유다.

뜨거운 여름, 모두들 산과 들로, 바다로 피서를 떠난다. 이 참에 노 부모들이 이 세상 끄트머리까지 가져가실 값진 추억을 만들어 드리는 일을 꼭 해보시길 바란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는 부모님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오신 이 땅의 아버지에게 여행만큼 행복함은 없을 것이리라는 생각에, 벌써 사춘기를 맞았는지 최근 들어 유난히도 애를 먹이는 아들의 손과 여든살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손을 다잡고 제주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뒤늦게서야 아버지를 이해하는 길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토양으로 만드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황재성(주간매일 취재부장)

매일신문 2009.08.06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5229&yy=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