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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가 인기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

벤저민 프랭클린은 가난한 집 17남매 중 열다섯째로 태어나 학교 교육이라곤 2년밖에 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헌법의 기틀을 잡고, 대학을 세우고, 우편과 도서관 제도를 만들고, 피뢰침을 발명했다. 그의 노년에 친구가 등을 떠밀었다. "자서전을 쓰게. 그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자서전을 쓰게 될 것이네. 그래서 사람들이 자서전에 실릴 만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면 플루타르크영웅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지 않겠는가."

▶ 프랭클린은 자서전에 20대에 정했던 열세 가지 도덕적 목표를 나열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약, 근면, 진실함, 정의, 온건, 청결, 침착, 순결, 겸손. 그는 이 목표를 어떻게 실천하려고 노력했는가를 썼다. 그러면서 "작가가 개정판에서 초판의 오류를 바로잡듯 나도 내 삶에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기는 하다"고 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참기 어려운 육체적 욕구가 생길 때마다 여자를 사서 관계했다. 돈도 돈이지만 몹시 꺼림칙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자서전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인생 지침서다.

▶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는 1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겼지만 자전적(自傳的) 소설은 끝내 쓰지 않았다. "나를 이야기하는 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은 작년 봄에야 나왔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기와 정치·종교적으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신나게 비판하고는 "나 죽고 100년 뒤에 책을 내라"고 유언했다.

▶ 인생의 황혼에 이르면 누구나 자기가 지나온 이 굽이 저 굽이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자기를 정직하게 드러내고 남과의 관계를 숨김없이 글로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화 선각자 서재필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태어난 해를 1866년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태어난 해는 그보다 2~3년 빨랐다고 한다. 학자들은 서재필이 자신의 '최연소 장원급제'를 내세우려는 강박에서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 서울시와 각 구청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평생교육 강좌 중에 '자서전 쓰기'가 인기라고 한다. 직장에서 은퇴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60대가 대부분이다. 잘난 점은 내세우고 허물은 감추려는 함정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자서전은 남은 인생을 살아갈 자세를 가다듬는 데도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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