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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장기요양보험 관련뉴스

[장기요양보험 도입 3년 점검] 장기요양기관 우후죽순...

서비스에 쓸 돈 환자유치에 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국가가 노인을 간호하고 건강한 노후를 돕는 제도다. 2008년 7월 시작된 지 올해로 만 3년째. 건강보험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30만 명 가까운 노인이 이 제도를 통해 재활 치료나 목욕 등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완전한 정착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시설 수가 늘어난 만큼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 노인 확보 위해 출혈 경쟁


지난달 29일 경기 동두천시를 찾았다. 지행역 인근 상가 4곳에는 각기 노인요양 입소시설이 들어서 있었지만 정원을 채운 곳은 한 곳도 없다.

A요양원은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정원이 40명인데 현재는 29명만 이용한다. 요양원장 고모 씨는 “개원하고 반년이 지나면 정원이 찰 것으로 예상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 노인 1명을 더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동두천시는 요양시설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노인은 1만2223명(5월 기준)인데 입소시설은 30곳, 재가기관은 41곳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 172명당 요양시설이 한 곳씩 있는 셈. 그러나 등급판정 결과 실제 입소시설에 갈 수 있는 1, 2등급을 받은 노인은 543명뿐이다.

노인이 사는 집으로 찾아와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기관의 난립은 더욱 심각하다. 병실 물리치료실 식당을 갖춰야 하는 입소시설과 달리 재가기관은 초기 투자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동두천 중앙역에서 동두천역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30∼40m당 1곳씩 재가기관이 들어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슈퍼마켓이나 세탁소보다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이러다 보니 고객을 빼앗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상당수 재가기관이 본인 부담금을 깎아주거나 아예 받지 않겠다면서 옮길 것을 권유한다.

도로변의 K복지센터는 이용 노인이 6명. 센터장 김모 씨는 “최근 어렵사리 확보한 노인을 계약 직전에 다른 기관에 빼앗겼다. 며칠 만에 다른 기관으로 옮기겠다는 노인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관리하던 노인을 데려가는 조건으로 재가기관에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요양보호사들마저 생겨났다.

D요양센터 박모 센터장은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사들고 경로당을 순회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다. 요양등급을 받을 만한 노인과 안면을 튼 뒤 집에 찾아가 시설이용을 권한다. 등급신청에 필요한 의사소견서 발급도 박 씨가 대신해준다. 그는 “보름 정도는 공을 들여야 노인 한 명을 확보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 제도 시행 후 요양시설 급증

장기요양보험 시행 이후 동두천시 입소시설은 24곳이 늘었다. 제도 시행 전 1곳도 없었던 재가기관은 한 달에 1.1개꼴로 생겨났다.

이런 상황은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 올해 5월 기준으로 입소시설은 3887곳, 재가기관은 1만9918곳이다. 2008년에 비하면 입소시설은 3배, 재가기관은 5배 늘었다.

이용자는 28만2661명으로 곳당 평균 11.9명꼴이다. 입소시설 정원이 40명 내외이고 재가기관도 수급자가 20명 이상은 돼야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급 불균형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요양시설이 늘어나면 비용이 내려가고 서비스는 좋아져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하는 급여는 똑같으므로 출혈 경쟁은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 결국 이용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수익을 내려고 보험금을 부당하게 청구하는 사례도 생긴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거나 횟수를 늘려 요양급여를 부당 청구한 금액은 지난해 62억 원을 넘었다. 장기요양보험법은 부담금 면제 같은 불법 유인행위를 금지할 뿐 처벌 규정이 없어 불법 행위가 방치되고 있다.

요양보호사 2명 가운데 1명이 가족인 점도 문제. 전체 요양보호사 가운데 동거가족은 4만4000명으로 32.8%에 이른다(2010년 12월 기준). 여기에 동거하지 않는 가족을 포함하면 50%를 넘어선다. 실제로 부당청구의 54.3%는 가족 요양보호사가 한 것으로 조사됐다.

○ 부실시설은 정리해야


요양시설의 난립과 과당경쟁은 제도 도입 초기에 정부가 설립요건을 느슨하게 만든 데서 비롯된다.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만들고 시설 신축비의 일부를 보조했다. 반면 장기요양보험의 적용 대상을 4, 5등급으로 확대하는 방안은 예산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부실한 시설은 외면 받고 우수한 시설은 자연스럽게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서비스 질에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을 받다 보니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다.

김지영 재가노인시설협회장은 “지역 편차가 심한 데다 영리기관까지 가세하면서 시장 자체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지나친 영리 추구 행위를 규제하고 기관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용현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관은 “기관 평가를 엄격히 시행해 우수기관에는 가산 수가를 주고 미흡한 기관에는 감산 수가를 적용하겠다”며 “하반기에 법을 개정해 불법 유인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우경임 기자, 동두천=한우신 기자  --> 기사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