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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공연 요청 100건 밀린 할머니 인형극단



 “안 돼, 안 돼~. 따라가면 안 돼….”

10일 오전 11시 서울 사직동 서울시유아교육진흥원. 30여 명의 유치원생이 인형극을 보면서 외쳤다. 인형극 속에서 어린이가 유괴범의 꼬임에 빠져 유괴범을 따라나서자 이를 보고 있던 유치원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손을 흔들었다.

무대 뒤에서는 백발의 할머니 7명이 바퀴가 달린 조그만 의자에 앉은 채 왔다 갔다 하면서 인형을 조작하고 있다. 손으로는 인형을 움직이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할머니들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무대는 60~70대 할머니 인형극단이 유치원생을 위해 공연을 하는 곳이다.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사 출신 15명으로 구성된 인형극단은 어린이 유괴 예방을 위한 인형극 '웅아 따라가지마'를 지난달 말부터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하루 두 차례씩 무료로 공연하고 있다.

인형극에서 유괴범의 꼬드김에도 어린이가 망설이자, 유괴범이 “이놈, 안 되겠구나”라며 강제로 끌고 가려 했다. 이때 관람석에서 고함이 튀어나왔다.

“야, 가방을 확 던져버려.”

한 유치원생이 흥분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순간, 공연장은 웃음꽃이 피었다. 인형극에서 주인공 어린이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자 경찰복장의 인형이 나타났다.

“와~ 잘했다~.”

유치원생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손뼉을 치고 즐거워했다.

인형극을 본 홍석재(6)군은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데려가려고 하면 '안 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외칠 것”이라고 말했다.

홍군을 인솔한 윤정유치원의 장미라 원감은 “단순히 그림이나 자료로 유괴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는 인형극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며 “어르신들이 전문가처럼 섬세하게 공연했다”고 말했다.

◆젊은이보다 더 열정적인 할머니들 인형극단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는 64세, 극단명은 '사피아(SAFIA)'다. 처음에는 '어르신 인형극단'으로 하려 했으나 단원들이 '어르신' '실버'라는 말은 쓰지 말라며 반대했다. 그래서 극단을 운영하는 한국생활안전연합의 영문 머리글자를 땄다.

할머니들은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최고령자인 이계행(70)씨는 “인형극을 하기 위해 하루 4시간씩 연습했다”며 “공연 전날에도 반드시 연습한다”고 말했다.

인형극단은 지난해 꾸려졌다. 생활안전연합이 서울시내 노인복지관에 참가자를 의뢰하자 모집인원의 두 배인 30여 명이 지원했다. 이 가운데 최종 교육을 마친 15명으로 극단을 꾸렸다. 활동기간은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이다. 5~9월은 연습만 했다.

무게가 2㎏인 유괴범 인형을 조작한 최윤정(67) 할머니는 “30~40분가량 인형을 들고 공연하느라 힘들지만 기분은 더 젊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대형 공연'을 하는 데 확보한 자금은 보건복지가족부가 지원한 1000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자원봉사 ▶유아교육진흥원의 공연장 무료 제공 ▶생활안전연합의 지원 등으로 극복하고 있다.

인형극은 올해 공연을 시작(9월 26일)하자마자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해 25회 공연할 예정이지만 유치원 100여 곳에서 관람 신청을 했을 정도다. 한국생활안전연합 윤선화 대표는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어르신들의 색다른 봉사에 대한 반응이 좋아 공연 횟수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8.10.23 11:40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10/23/32283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