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다가 대문 앞에서 뒷동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인사를 드리니 반색을 하신다. 뵐 때마다 깨끗하고 고운 모습인데 언제나 수줍어하시던 분이 오늘은 나를 붙들고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저기 저 앞에 사는 할머니 돌아가신 거 알지. 왜 다리 아파서 절뚝거리면서 보행기 끌고 다니던 그 할머니, 날 데리고 산보도 같이 가고, 내가 고마워서 꿩만두도 한번 대접하고 했는데, 저수지에 빠져서 119도 오고 했는데… 그 할머니 그렇게 가고 나서 내가 사흘을 여기가 아파.”
할머니는 당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죽었다는 그분이 어느 할머니인지 잘 짐작도 가지 않은 채로 나는 개를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저녁 때 앞집 새댁에게서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저수지에 빠져서 숨졌다는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다음날, 가을 접어들면서부터 벼르던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보건소에 갔다. 지난해에도 보건소에서 맞았는데, 병원보다 조금 가격이 쌌다. 접수 종이에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적어내니 접수처 청년이 주민등록증을 내란다.
“이제 오시면 어쩝니까? 본래 공짜는 10월까지예요.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행히 추가로 조금 갖다놓은 게 있어서예요. 내년에는 꼭 10월에 오세요.”
서슴없이 야단치는 청년의 훈계를 받으며 한마디도 못하고 멀뚱하니 서서 속으로는, 누가 공짜로 놔 달래, 하며 투덜거리는데 그제서야 벽에 붙은 ‘1948년 12월 이전 출생자는 무료로 독감 예방주사를 놔준다’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 대한민국 정말 좋은 나라네, 머쓱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온전히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런 배려를 받을 만큼 내가 정말로, 확실하게, 엄연히 노인이라는 증거니까. 믿고 싶지 않지만 너무 명확해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그래서 조금 메슥거리는 노년에 대한 실감. 아마 사람이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시간 중에 가장 생뚱맞고, 황당하고 난처한 상황은 자신이 이미 노년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일 것이다.
노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미 입 안에 들어온 쓴 약을 어쩔 수 없이 삼키는 행위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 낯설고 야릇한 노년이라는 이름의 쓴맛은 유감스럽게 한번 삼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쓴약은 시도 때도 없이 순간순간 내 입속을 가득 채우고는 삼키라고 위협한다. 어째선지 이 약은 뱉어낼 방법이 없다. 눈을 꾹 감고, 그 역겨운 냄새와 쓴맛을 참고 되도록 단숨에 삼켜버리고는 재빨리 사탕 한 알 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체해야 한다.
되돌아보면 40대 후반부터 나는 노년에 대한 연습을 해온 셈이다. 노년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고, 혹시 나중에 글감이 될까 남겨뒀던 편지며 메모 같은 게 든 상자들을 미련없이 태워 없앴고, 보통 10년은 넘게 쓰는 가전제품을 살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 될까 아니면 한번 더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 어쩌면 쉰둘에 급작스레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나는 늘 죽음과 멀지않게 있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몇 년 전 홍수로 집이 물에 잠겼을 때에는, 게을러서 정리를 못하는 내게 이래도 안 할 거냐며 누가 등을 떼밀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 너무 화가 나서 거의 모든 짐을 그대로 버렸다. 말리면 건질 수 있을 듯한 사진첩 예닐곱 권과 10년간 애써 모은 자료와 새 장편 파일이 담긴 컴퓨터조차 복구해 볼 노력도 하지 않고 몽땅 버려 버렸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이사하면 또 버릴 것이 생기고 사야 할 것이 생긴다. 그래서 한 가지 지키는 원칙이 있다. 일체의 장식을, 군더더기를 더 이상은 사들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내가 갖고 싶다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어쩌면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아니라 시원찮은 경제 능력이 저절로 그런 마음을 못 내게 도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노년에 대해서 그토록 준비하고(돈만 빼고 모든 것을 다 준비한 줄 알았다.) 즐거이 선선하게 받아들이리라고 다짐해 왔는데 막상 그 시간이 오자 그 생경스러움이라니. 노년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이다.
이제 비로소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도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웠을까? 자신이 인정할 새도 없이 들이닥치는 정신적, 육체적 쇠퇴. 거의 공황에 가까운 그 무력감을 혼자서 억지로 받아들이고 삭이느라 얼마나 외로웠을까?
지금 생각하면 기막히는 일이지만, 젊은 시절, 방자하게 그 젊음이 지긋지긋했던 나는 늘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을 병풍 접듯이 접어서 그냥 바로 40, 50, 60이 돼서 더는 어쩌지 못할 나이가 되었으면 했다. 내가 한 가지 비슷하게라도 맞힌 게 있다면 노년이 정말 더는 어쩌지 못할 나이라는 것이다.
그 할머니의 죽음 소식을 듣고 나서 사흘이 지나서야 나는 문득 늘 산책길에서 마주치던 할머니의 얼굴 하나를 건져냈다. 그제서야 지난 며칠 그 할머니를 못 뵈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전 길에서 만난 그 할머니가 뜬금없이 내게 하신 말씀도 생각났다.
“다리가 너무 아파. 그런데 아무 데에도 말할 데가 없어.”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9개월.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절규에 나는 조금 당황해서 하나마나 한 바보 같은 말을 했었다.
“그래도 자꾸 걸으셔야 해요. 걷지 않으면 정말 못 걷게 되거든요.”
그때 내가 할머니와 좀 더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시간이 지나도 나는 가끔 그 할머니를 생각한다. 마을에서 저수지까지 족히 40분은 걸리는 거리를 아픈 다리를 끌며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그렇게 단호한 그분의 결단을, 그래도 참고 견뎌야 했다며 나무랄 생각은 더더욱 없다.
[[김민숙 / 소설가]]
문화일보 2008.11.15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111501032237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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