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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연극 무대에서 화려한 인생 2막을 연다

연극 무대는 참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에선 64세의 할머니도 12살 어린아이가 된다. 74세의 흰 머리 할머니가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멋쟁이 신사가 되어 아가씨를 유혹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나이를 잊고 성별을 잊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또 다른 인생을 살아 볼 수 있는 공간. 실버극단 ‘학산’의 할머니 배우들이 오늘도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60이 넘어 처음으로 서게 된 연극 무대. 그 무대를 통해 잃어버린 꿈을 찾고, 인생의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할머니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시 찾은 꿈, 배우

매주 수요일 1시반. 실버극단 ‘학산’의 정기연습이 있는 날이다. 인천 주안동에 위치한 학산문화원 연습실에 도착한 할머니 배우들은 저마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더니 십대 소녀들마냥 끼리끼리 모여 앉아 수다 삼매경에 한창이다. 손주 얘기, 아들 얘기, 집안 살림 사는 얘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은 누가 봐도 평범한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 그대로다.

“자, 11월 1일에 우리 ‘미워도 다시 한번’ 공연 있습니다. 이제 연습 시작합시다.”

저마다의 살아가는 얘기로 한참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를 바꾼 건 이곳 회장을 맡고 있는 윤순자(74) 할머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 윤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할머니들은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대본을 들고 큰 소리를 내어 연기연습을 시작한다. 언니에게 떼를 쓰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예쁜 아가씨를 유혹하는 멋쟁이 청년까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집안 살림 얘기를 꽃피우던 할머니들은 온데간데없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에 몰입해 열정을 불태우는 ‘황혼의 배우’들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현재 학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할머니 배우들은 모두 10여 명. 그 중에서도 왕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윤 할머니는 학산의 최고령 배우다.

윤 할머니는 사무용가구를 제작, 판매하는 사업체를 운영하다 10여 년 전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준 뒤 여느 할머니들처럼 손자를 키우는 재미에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손자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물론 쏠쏠했다.

하지만 이제 그 손자들마저 할미 손을 거치지 않고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고 보니 ‘무언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든 것이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학산의 배우 모집 공고. 윤 할머니는 공고를 보자마자 어렸을 적 자신이 참 부러워했던 친구 한명이 생각났다고 한다.

“어렸을 적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 친구를 참 많이 부러워했어요. 부끄럽지만 나도 보따리 싸들고 친구를 따라갈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동경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었죠. 학산에서 배우를 모집한다고 하니까 옛날 그 친구를 부러워하던 소녀시절의 마음이 되살아났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고, 지금 이렇게 배우가 됐답니다.”

너무나 간절했던 꿈이었지만 사실 평생을 살아가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떠올려본 적은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자식들 키우느라 그 꿈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인지도 모른다. 윤 할머니는 “잊고 살았던 어릴 적 꿈을 지금에야 펼칠 수 있게 됐으니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생의 자신감을 되찾아 준, 연기

호영자(66) 할머니는 연기를 시작하면서 깊은 우울증을 떨쳐냈다. 젊었을 적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호 할머니는 남편과 결혼한 후에도 일반 회사의 사원교육 등을 맡으며 꾸준히 사회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든든한 남편과 당당한 내 일이 있었으니 호 할머니는 사실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50세가 되던 해, 갑작스럽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호 할머니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직장도 그만 둬야 했다. 꼬박 3년을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며 병원에 다녔을 만큼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3년 전 연극 무대에 서면서부터. 처음 그가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땐 사실 자식들도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처음에 내가 극단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아들 녀석이 ‘엄마 안돼’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더 오기가 생겼어요. ‘아직까지도 이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했죠. 어느날부턴가 제 표정이 밝아지니까 아들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제 연극 무대를 본 아들이 '엄마 대단해'를 연발하던 때는 지금도 가장 뿌듯한 순간이에요."

호 할머니는 "연극하면서 태도나 표정뿐만 아니라 실제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지금은 굉장히 자신감 있고 화끈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무언가 하나 결정할 일이 있으면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쉽게 결정하지 못할 만큼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모든 사물을 넓게 아우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 주변에서도 달라진 저를 보면 깜짝 깜짝 놀라요. 저 또한 그런 제 자신을 보면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요.”

호 할머니는 그 비결로 ‘자신감’을 꼽는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의 너무나 긴장된 순간, 하지만 무대에 올라가 연기를 하고 자신의 연기를 본 사람들이 울고 웃을 때 느끼는 쾌감. 그 성취도와 만족감이 하나 둘 쌓여 자신감이 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아직도 무대 위에 오르기 전에는 얼마나 많이 떠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럴수록 제가 제대로 연기를 해 냈을 때의 쾌감이 얼마나 강한지도 알고 있죠. 그래서 연극 무대는 저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 해 준 축복같아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기할 겁니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곳, 무대

지난 2006년 학산의 초창기 때부터 배우로 활동해 온 강용순(64) 할머니는 금융회사에서 일을 하다 지난 1994년 은퇴를 맞이했다. 처음엔 편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았다. 하지만 달콤한 휴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 이제 계속 집에 있어야 하나? 이대로 나는 이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라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때는 내가 참 이상한 사람 같았어요. 지금껏 살아 온 습관이 있으니까 집안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어딘가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나가려고 하면 갈 때가 없는 거에요. 은퇴 하고 1년간은 참 많이 방황했어요.”

그렇게 주부로 살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학산’이었다. 그래서 강 할머니는 학산의 무대를 “제 2의 인생이 시작된 곳”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가 새롭게 시작된 ‘제2의 인생’에서 가장 만족하는 건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 다시 말해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기쁨이다.

학산이 주로 공연을 펼치는 곳은 노인 요양소나 병원이 대부분이다. 학산의 연기를 가장 많이 본 관객들은 다름 아닌 배우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노인들이라는 얘기다.

“무대에 서 있을 뿐이지 사실은 우리 무대를 보는 관객들과 전혀 다른 입장이 아닙니다. 어쩌면 내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들과도 전혀 다르지 않은 처지고요. 요양소나 병원에서 힘든 노인들을 위해 연기를 하고 있으면 그래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듭니다. 내가 이만큼 건강하다는 것, 그래서 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죠.”

극본 또한 남다르다. ‘인생’ ‘백만송이 장미’ 등은 모두 학산에서 배우로 있는 할머니들이 직접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엮은 창작극이다. 강 할머니는 자신들의 무대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노인들이 꾸미고 노인들이 즐기는 무대입니다. 그러니 공감대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노인들이 하는 연극이 어설프더라도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건 바로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바라는 건 단 하나입니다. 우리 무대를 본 관객들도 ‘나도 빨리 건강해져서 저런 무대에 서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머니투데이  2008.10.30 14:29

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w.php?type=1&no=2008102317085594937&outli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