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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이름뿐인 ‘노인보호구역’


“많이 위험하지. 하지만 노인복지관으로 가는 다른 길이 없어.”

▲ 노인보호구역(실버존)으로 지정된 서울 마장동 노인종합복지관 앞 도로의 양쪽 끝은 주차장으로 변했고, 차량들은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은 채 질주하고 있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 노인종합복지관 앞에서 만난 이모(69)씨는 승용차와 트럭, 오토바이가 뒤섞여 달리는 차도를 위험천만하게 걷고 있었다. 이곳은 노인보호구역인 ‘실버존’이다.

실버존이 시작되는 도로에는 ‘노인보호’라는 흰색 문구가 씌어 있었지만 제한속도인 시속 30㎞를 지키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실버존을 알리는 문구만 있을 뿐 스쿨존과는 달리 차도에 규정속도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차도 양쪽 끝은 주차장으로 변했고, 중앙선이 없어 마주 달리는 차량들은 아찔한 곡예운전을 연출했다. 인도는 카센터에서 세워놓은 수리차량으로 막혀 있었다. 노인복지관 담당자는 “어디가 위험한지 조사도 하지 않고 그저 복지관 앞에 과속방지턱 하나만 설치했다.”면서 “있으나마나한 노인보호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노인들의 교통사고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도입된 실버존이 전시행정으로 전락하고 있다. 실버존은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노인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행정안전부·보건복지가족부·국토해양부 공동부령)’으로 지정·운영된다. 노인복지시설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설치를 요청하면 지자체와 경찰청이 협의해 복지시설의 300m 안에서 지정한다. 실버존으로 지정되면 차량 속도는 시속 30㎞ 이하로 제한되고, 횡단보도 신호등의 점멸 시간도 길어진다. 방호울타리와 과속방지턱도 설치해야 한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전국 33곳에서 실버존을 시범실시했고, 올해 6월1일부터는 전면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범실시 결과에 대한 효과분석도 안된 상태이며, 홍보도 부족해 실버존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노인회관이나 양로원 주변만 지정대상이어서 공원, 게이트볼장 등 실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지자체 4곳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범실시 때부터 실버존 설치를 거부했다. 설치비용은 한 곳에 1억 5000만∼2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따라서 전면실시된 지 두 달이 돼가지만 아직 한 곳도 늘리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은 전면실시와 함께 757곳을 실버존으로 지정했다.”면서도 “아직 어떤 지자체도 실질적인 운영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자체마다 교통 관련 부서와 복지 관련 부서가 서로 관할을 떠넘기는 상황이라 추가 지정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중앙정부의 예산을 받아 실버존을 활성화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기획예산처에서 예산편성 불가 통보를 받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전국에 5만 9361곳의 노인복지시설이 들어설 만큼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는데 노인들에 대한 안전보호 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올해 1∼3월간 발생한 4만 4404건의 교통사고 가운데 9.5%인 1329건이 65세 이상 노인의 교통사고였다. 노인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05년 1만 9066건에서 지난해 2만 1134건으로 늘었다. 반면 전체 교통사고는 같은 기간 21만 4171건에서 21만 1662건으로 줄었다.

서울신문  2008.07.29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729009004&spa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