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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지역뉴스

푸른언덕에 그림같은 집 짓고…전원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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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학교 안 간지 5년이 넘었어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택지개발지구를 지나 88골프장으로 향하는 길. 그곳에 '향린동산'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었다. 완전한 푸른 빛으로 변하지 못한, 그러나 싱그런 연한 녹색 빛깔의 나무 숲 사잇길로 자전거를 탄 전원(가명ㆍ18)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길 옆으론 들릴 듯 말듯 개울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전원이의 뺨에도 소리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향린동산에 살고 있는 전원이. 4년 전, 그는 용인 인근의 또 다른 전원 단지에 살다 이곳으로 이사왔다. 10년 전부터 시작한 전원 생활. 이제 고등학교 2학년, 학교에서 수업과 자율학습, 학원을 오가는 또래 친구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5년 째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는 전원이 등에 전자 기타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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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살어리랏다.' 노랫말 가사가 아니다. 때론 혼자만의 시간, 때론 가족만의 시간을 꿈꾸는 도심 속 사람들의 소망이다. 북적이는 사람과 차를 피해,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과 건물들 틈에서 이리저리 몸을 가누는 도심의 사람들. 그들이 한 번쯤 깊게 고민해보는 삶이다. 한 번쯤 긴 탄식과 함께 그려본 머리 속 희망사항이다.

향린동산에서 만난 전원 생활 10년차 주부 정자연(가명)씨. 그는 "일단 하루가 여유롭잖아요. 아침은 조금 바쁠지 몰라도 그 이후 모든 게 다 내 시간이에요"라고 말을 꺼냈다. 질끈 동여맨 머리스타일, 살짝 그을린 피부, 헐렁한 듯 여유로워보이는 티셔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의지가 배인 청바지와 등산화. 오후 3시께 만난 그의 겉모습에는 도심의 바쁨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가 전하는 전원의 삶은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이다. 10여년 전.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좁은 거실을 나는 듯 건너 화장실로 주방으로 뛰는 모습. 방과 방 사이를 누비며 가족의 아침 시작을 독려하는 자신. 어떻게 시작했는지 모르게 아침부터 소비된 시간은 하루 종일 계속.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모른채 아침이 다시 시작되는 삶. 시간을 소비하는 도심의 삶을 그는 회상했다. 그리고 등에 맨 배낭을 돌려보였다. 막 캔 쑥, 나물이 한 가득 들어있었다.

향린 동산에는 현재 25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38년 전, 향린교회 교인 30명으로 출발한 전원주택단지의 시작. 법적인 문제와 각종 개발 등 난관은 많았지만 어느 덧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전원단지가 됐다. 단지 내 여기저기에선 새로운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루에도 전원의 삶을 그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고 동산 관계자는 귀띔했다. 최근 개발된 인근 주민들도 알음알음 찾아와 전원 생활을 함께 즐기고 있다고도 전했다.

정씨가 전원생활을 결심한 이유는 자녀들 때문이었다. 지금은 중학생으로 불쑥 성장해버린 둘째 아들이 선천적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전원 생활을 결심했다. 깨끗한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들과 숲 속 길을 누비며 몸으로 접할 자연의 힘을 기대했다. 정씨는 "둘째는 완쾌됐다.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생활이 몸에 익어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전원을 벗어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도심과의 완전한 단절.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인근 분당신도시와 용인 동백지구 덕에 이곳의 생활은 편리해졌다. 자전거를 타고 통학이 가능한 거리, 걸어서 10여분이면 동백지구내 편의시설과 지하철을 이용, 서울까지도 출퇴근이 가능하다.

잠시 후 정씨 곁으로 동백지구 내 D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모(여ㆍ43)씨 등 서넛의 주부들과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바베큐 파티 이야기, 도자기 굽는 모임 이야기. 교회 봉사 활동 이야기. 왁자지껄한 대화는 연신 이어졌다. 그 중에 이씨의 딸이 던지는 투정도 섞여 있었다. 아파트를 벗어나 이 동산으로 이사를 오자는 딸의 볼멘 소리. 하지만 딸의 투정에 이씨는 답했다.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죠. 도시가스가 안 들어와 난방비 많이 나가고. 아무래도 아파트보단 안전 문제도 있잖아요. 그리고 정원 가꾸는 거 쉽지 않고요." 하지만 이런 단점은 자유와 여유로움 반대편의 자그마한 불편이겠다 싶었다.

글=남상욱 기자(kaka@heraldm.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