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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실버관련/시니어소식, 정보

“할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 것 같네요…”

노인생애체험센터…노인일상 등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어이쿠~ 시야가 이렇게 좁아지네.”

특수 안경(고글)을 착용한 50대 중년여성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함께 온 6명의 여성들도 낑낑대며 특수 제작된 체험복을 입느라 진을 뺐다.

팔과 다리에는 모래주머니, 손가락과 무릎에 억제대까지 달고 나니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아졌다. 이렇게 10여분 동안 옷을 갈아입고서야 본격적으로 노인생애를 체험할 준비가 끝났다.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뒤편에 자리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관. 이 건물 1층에는 노인의 일상생활을 가상 체험할 수 있는 체험센터가 마련돼 있다. 취재를 위해 찾은 지난 17일에는 요양보호사 교육생 7명이 노인생애를 체험하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

노인들에게 요양서비스를 직접적으로 제공할 요양보호사들에게는 요즘 이 같은 노인생애체험센터가 교육과정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화에 따른 불편을 몸소 익혀야 서비스 대상인 노인에게 올바른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생애체험은 체험복을 입는 데에서 시작된다. 근력을 저하시키는 모래주머니와 억제대를 신체에 착용해 노인들이 평소 거동하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체감한다. 특수 제작된 안경과 귀마개를 착용하면 노화에 따른 시력저하와 이명(소리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손장갑을 껴 촉각도 둔화시킨다.

복장을 갖추고 들어간 체험실은 공공생활과 개인생활, 보행생활 등 크게 3가지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 냉장고를 열어 내부의 용기를 열어보고, 음료수병의 유통기한도 확인해보면서 일상적 활동조차 노인들에게 버겁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백내장과 녹내장 안경도 바꿔 써보고, 지하철 진입경고음과 차량경적소리도 들어보면서 노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노년 일상체험 통해 사회 인식 개선
주택개조 등 노인 위한 환경개선 해법 제시


체험 후 노인에 대한 선입견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체험실 한켠에 마련된 게시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시판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체험후기가 적힌 쪽지가 한가득 붙어 있다.

할머니를 여읜 한 체험객은 “조금만 더 빨리 와 봤으면 할머니와 더 재미있게 지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남겼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 잘해드려야겠다”는 반성의 글도 있다.

대학에서 노인복지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도 “정말 이 정도로 힘들까. 파이팅!”이라는 문구로 소감을 대신했다. “너무 힘들어서 팔 저려요”라는 투정에서부터 “건강유지에 힘써야지. 성공노화!”라는 중년 남성의 다짐도 보였다. 한 복지관 종사자는 “체험해보니 얼마 전 눈 수술을 하신 두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안쓰러워했다.

특히 이 같은 노인생애체험은 노인에 대한 이해와 함께 노인을 위한 환경개선이 사회적으로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체험실 내부공간은 각종 고령친화용품산업의 첨단이 구현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휠체어로 들어가는 현관 입구에는 문턱의 높이 차를 버튼 하나로 해결하는 ‘단차해소기’가 설치돼 있고, 주방에는 일반인의 허리 높이에 각종 버튼이 장착돼 후드와 형광등의 전원은 물론 싱크대와 수납장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휠체어를 탄 노인이 쉽게 주방일을 할 수 있도록 싱크대 하부 공간은 비워 놓았다. 가스레인지도 과열되면 보온으로 저절로 넘어가도록 안전장치가 갖춰져 있고, 세탁기 역시 고령자가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서서 열 수 있도록 설계됐다.

거실 식탁에는 노인을 위한 다양한 실버용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리프트 방석이 설치된 소파, 관절을 구부리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도록 앞이 구부러진 스푼, 홈이 깊게 패인 접시, 고개를 많이 젖히지 않아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고안된 물컵, 미끄럼방지 손잡이와 무게감을 더해 수전증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수저 등 일반인에게는 신기하지만 노인들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접할 수 있다.

또 욕창방지 방수매트와 변기가 설치된 침대에서부터 옷장, 문손잡이, 가구 등 노인을 위한 복지용구와 주택개조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집 밖을 나오면 계단과 슬로프를 통해 노인의 신체특성을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실제를 체험해볼 수도 있다.

체험을 모두 마친 예비 요양보호사들은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40대 주부인 전정숙씨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백분의 일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오삼씨는 “젊은층도 빨리 체험해봐야 노인에 대한 공경심과 배려심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어머니가 뇌졸중을 앓고 있다는 한혜경씨는 “다양하게 전시된 실버용품들에 욕심이 난다”고 했다.

이 같은 체험객들의 노인에 대한 인식과 반응은 체험전후 설문조사를 통해 수집됐다. 체험센터 황은영 사회복지사는 “설문조사한 내용을 집계해 연말에 관련 자료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인에 대한 공경심 높이자는 취지로 운영”
[인터뷰] 정운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회장

▲ 노인생애체험센터는 어떻게 문을 열게 됐나.

= 일본에서는 공기업과 사기업의 후원 속에 노인생애체험센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대한노인회도 삼성그룹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한 7억원을 후원 받아 지난 2006년 10월에 노인생애체험센터를 열었다. 사회봉사와 노인에 대한 공경심을 높이자는 취지로 운영하고 있다. 대한노인회 산하에서 노인생애체험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연합회가 유일한데 조만간 경기도연합회도 회관 건물을 신축하면서 노인생애체험센터를 함께 지을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 센터를 찾는 방문객의 유형은.

= 연간 4500~5000명 정도 방문한다. 청소년은 물론 기업 관계자들도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교보생명보험 관계자들이 체험센터를 방문했는데 체험 내용을 바탕으로 천안에서 직원들을 교육한다고 했다. 실버산업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종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에서도 노인복지정책 마련을 위해 센터를 찾았다. 지난해 국무총리실에서 28명이 방문했고,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10명의 직원이 방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다녀갔다.

▲ 노인복지와 실버산업이 정책적으로 확대되면서 센터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것 같다.

= 그렇다. 체험센터를 찾은 많은 방문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노인에 대한 이해와 공경심, 배려심이 높아졌다. 노인체험이 노인에 대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선입견을 해소하고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체험자들에게 건강한 노후준비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노인복지관련 종사자들이 체험하면 직무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은 물론 노인관련기관과 시설 종사자, 자원봉사자, 노후를 준비하는 중장년층 등 많은 사람들이 센터를 이용했으면 한다. 노인에 대한 이해가 앞으로 노인일자리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실버케어뉴스  2008.09.30 08:05